민주노총이 이라크에 우리 군인들을 더 보내지 말라고 목청을 높이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자칭 이 땅의 노동자, 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라면 국가 주요 현안에 적절히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도 저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파병반대 1인 시위를 벌인 연예인도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 사회의 중심축(軸)으로 자리잡은 민주노총이 파병에 침묵하는 건 직무 유기처럼 보인다.
이수호 위원장도 민주노총의 존재 이유에 대해 “밥그릇 챙기고 임금을 올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라며 “파병철회 요구는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파병철회를 구실로 파업에 나섰다는 점이다. 지난달 29일 시작된 2차 총력투쟁 결의문에서 민주노총은 “사대매국정책인 이라크파병을 철회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고 선언했다.
여기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민주노총은 노동단체인가, 정치단체인가, 아니면 반미민족자결을 추구하는 단체인가.
파병철회를 전면에 내걸고 파업에 들어간 순간 민주노총의 단체교섭 파트너는 기업이 아니라 정부나 청와대로 바뀌었다. 파병에 관한한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에 돌아간다. 민주노총이 내세운 파업 명분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올 하투(夏鬪)에서 민주노총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게 하나 더 있다. 제조업 산업공동화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한 것이 바로 그렇다. 제 발등을 도끼로 찍은 격이다. 왜 그런가.
민주노총은 산업공동화를 “자본이 돈벌이를 위해 공장 문을 닫고 국가경제를 내던지고 도망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 자본, 즉 기업들은 왜 앞다퉈 중국으로 ‘도망’을 치는 걸까.
그 이유는 누구보다 노조가 잘 안다. 국내의 높은 임금 수준과 지긋지긋한 노사분규, 철밥통 노조가 큰 원인이다. 근본대책은 삼척동자도 잘 안다. 지나친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해고를 쉽게 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내세워 파업하는 것도 자제해 생산차질을 줄여야 한다.
이같은 대책을 실천에 옮기면 당장 정규직 노조 기득권층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 이런 걸 각오하고 민주노총이 진실로 산업공동화에 대한 근본대책을 요구했다면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는 현재 민주노총이 파병철회와 파업을 연계한 것을 놓고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 중이다. 8대 2의 비율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아이디 ‘여름비’처럼 “외국 모든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정치적 성향을 띠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며 파업에 찬성하는 쪽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부정적이다.
아이디 ‘sally’는 “파업할 직장이라도 있어서 좋으시겠네요∼”라며 “한번 실컷 해보세요∼ 기업들 다 중국이랑 동남아로 떠나서 산업공동화 일어나겠고 그럼 당신네들 일할 직장도 없어지니까 이젠 파업할 일도 없어지겠네요∼”라고 비꼬았다.
아이디 ‘누굴까용’은 “파병반대에 노동자들까지 선동하는 세력들이 정말 순수한 노동운동가들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썼다.
그러잖아도 나라가 어수선한데, 하필이면 이때 파병철회를 요구하며 공장을 세웠어야 했을까. 연초 취임 이래 비교적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 온 이수호 위원장의 결정이기에 더 아쉽다.
민주노총은 2차 총력투쟁에 이어 오는 20일 3차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 결정을 뒤집지 않는 한 앞으로 노사협상 테이블에선 이런 대화가 오갈 지도 모른다.
노조=“파병을 철회하지 않으면 전면 파업을 결코 중단하지 않겠다.”
회사=“우리에겐 파병을 철회할 힘도, 권한도 없다.”
노조=“사실 은폐와 정보 왜곡을 통해 김선일씨를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노무현 정부의 무책임을 규탄한다.”
회사=“번지수가 틀렸다. 그 문제는 청와대나 외교부에 가서 항의하기 바란다. ”
노조=“이 땅의 노동자 계급과 민중은 미국의 더럽고 명분없는 침략전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회사=“부시 대통령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혹시 백악관에 갈 일 있으면 전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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