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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롤리타]중년남자와 12살 의붓딸의 일탈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11.17 12:06

수정 2014.11.07 12:05


러시아 태생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는 혁명이후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캠브리지에서 불문학과 곤충학을 공부하기도 한 나보코프는 1937년 독일을 떠나 1940년 까지는 파리에서, 이후에는 미국에 건너가 살았다. 코넬대학에서 여러해 동안 러시아문학을 강의하기도 한 나보코프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소설 ‘롤리타’(1955)는 1949년에서 1953년사이에 영어로 집필되었으나 ‘외설성’때문에 처음 미국현지에서는 출판사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소설은 파리의 올림피아 출판사에서 처음 발간되고 미국에서의 출간은 그후 3년 후의 일이다. 미국에서의 출간과 동시에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로리타’의 서술 방식은 알프레드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과 함께 많은 비평가들에게는 포스트모던한 소설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롤리타 신드롬’으로 대변되는 중년의 주인공과 열두 살의 의붓딸 롤리타와의 일종의 ‘일탈된’ 애정행각이 이 소설의 기본줄거리를 이룬다. ‘롤리타’는 프랑스 태생의 불문학자 험버트 험버트가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서 자신의 강박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시작된다. 험버트 험버트라는 기이한 이름은 마치 도플갱어와 같이 두개의 상반된 정체성이 주인공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음을 독자에게 암시하고 있다.


2차대전 직후 미국의 뉴잉글랜드로 건너온 주인공은 유년기의 사랑을 상기시키는 어린소녀 돌로레스(롤리타) 헤이즈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녀의 곁에 머물수 있기 위해서 그녀의 어머니 샬로트와 결혼한다. 험버트는 자신의 일기에 롤리타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고 우연히 그 아이와 스치는 모든 순간에 느낀 흥분과 환희를 적어놓는데, 이 일기를 발견한 샬로트는 험버트에게 어떤 복수를 할 시간도 없이 차에 치여 죽는다.

자신의 숨겨진 욕망과 정열이 탄로날까 두려운 험버트는 그 길로 롤리타를 태우고 수개월간 미국 전역을 떠돌게 된다. 롤리타는 이제 순진무구한 유혹자이자 적극적인 희생자가 되고, 험버트는 수동적인 피유혹자역을 자처하는, 부적절한 애정의 도피 행각인 셈이다. 어느날 롤리타는 중년의 극작가 클레어 퀼티와 함께 사라지고, 롤리타를 찾으려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뒤 3년이 지나서야 험버트는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결혼하여 임신한 롤리타가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였다. 그토록 갈망하던 롤리타와의 재회에서 험버트는 이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홀몸도 아닌, 무척 곤궁한 모습의 롤리타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을 갈구하지만 거절당한다.


험버트는 자신의 님프를 빼앗아간 퀼티를 찾아가 쏘아죽이고는 아름다운 풍광의 작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비탈길에 올라가 저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다음과 같은 독백을 내뱉는다. “나는 알았다, 가망없이 가슴아픈 것은 내 곁에 롤리타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 소리들의 어울림속에 그녀의 음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기 때문임을.”

/김영룡(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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