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은행

새해 벽두 은행장이 뛴다-강권석 기업은행장]“웃어라 企up!” 현장경영

고은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1.18 12:23

수정 2014.11.07 22:44


을유(乙酉)년, 기업은행에 쏠리는 관심이 남다르다. 올해 ‘경제 올인’을 선언한 참여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 ‘중소기업 육성’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육성의 첨병 역할을 해온 기업은행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금융계의 아이디어뱅크, 금융계의 에너자이저’로 불리는 강권석 기업은행장의 첫 대외업무도 중소기업 산업 현장 방문으로 시작됐다.

지난 7일 서울 구로동 디지털단지에서 시작된 강행장의 중소기업 릴레이투어는 부산, 울산을 거쳐 인천으로 이어졌다. 지난 14일 경인지역을 방문한 강행장을 동행취재했다.

■오전 7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한 가운데 인천 송도비치호텔 로비는 벌써 왁자지껄하다. 이날 기업은행이 주최한 ‘2005년 경제전망 및 중소기업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인지역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속속 모여든 것이다.
200명은 족히 넘어보였다. 경인지역의 핵심 경제인들이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2층 행사장 앞에 도착하자 강행장을 비롯한 전 임원들이 줄지어 중소기업 CEO들을 맞았다. 경인지역 지점장들도 총출동했다. 오전 7시15분. 한 테이블당 10명씩 25개의 테이블이 참석자들로 가득 찼다. 서로 인사를 나누느라 한바탕 북새통을 이뤘다.

자리에 앉자 ‘起 up!일어나라 국민경제, 企 up! 웃어라 중소기업, 氣 up!힘내라 대한민국, 基 up!기업의 터전’이라는 ‘기’를 활용한 광고카피가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이 광고 카피는 강행장이 직접 고안한 아이디어라는 후문이다. 기업은행의 ‘기’자를 활용해볼 수 없을까 고민한 강행장이 옥편을 찾아가며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강행장의 아이디어는 여기저기서 빛난다. 중소기업 CEO들의 기를 살리기 위한 명예의 전당도, 지점장에게 지역행장의 권한을 준다는 의미의 ‘지행장’이라는 용어도, 대기업협력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네트워크론의 개념도 강행장이 고안했다고 한다. 아이디어 은행장으로 불릴 만하다.

행사시작 전 비전선포와 은행 활동 등에 관한 기업은행의 영상물에 눈길이 모아졌다. 이 가운데도 각 테이블에 앉은 임원과 지점장들은 중기CEO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7시30분부터 8시까지는 조찬이 이어졌다. 울산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한 중소기업CEO는 강행장을 직접 보기 위해 인천까지 올라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중기CEO들과 강행장의 격의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강행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중소기업을 활성화하겠다니 좋으시죠”라고 묻고 “때문에 사실 부담이 크다”며 말을 꺼냈다.

시중은행과 기업은행의 역할이 다른 것 같다는 CEO들의 의견에 대해 그는 “사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전문 은행이기 때문에 시중은행보다 중기의 애로사항과 요구사항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진 강권석 기업은행장의 환영사. 그는 “업종에 따라 IMF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올해 역시 경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해결방안을 모색해보자”고 말했다. 그는 불철주야 기업경영에 헌신하는 CEO야말로 우리경제의 희망이라며 참석한 CEO들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강행장은 “은행과 기업이 합침으로써 국내경제 앞당길 수 있다”며 “작은 물방울이 큰 바다를 이루듯 작은 뜻이 모여 큰 뜻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전 10시. 차백인 금융연구원 부원장의 올해 경제전망과 배경일 기은 이사의 중기지원책에 대한 설명이 예정보다 길어져 은행장과의 대화시간도 예정보다 늦게 시작됐다. 은행장과의 대화에서 중기인들은 작심한 듯 뼈 있는 말을 쏟아냈다. 남동공단에서 전자·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권모 사장은 “금리도 다른 은행보다 비싸고 오랫동안 거래했는데 특별한 우대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강행장과 임원들은 “총 자산의 84%가 중소기업에 지원되는 만큼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있어 금리가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대부분 정책자금이 기은을 통해 지원되므로 정책자금과 일반자금을 잘 혼용해 대출받으면 평균금리는 낮아질 것”이라고 성의껏 설명했다. 또 최대한 낮은 금리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닭고기 식품제조업체 사장은 대출업종을 분류할 때 ‘위험상위업종’이라는 용어를 변경해 달라고 주문했고 강행장은 “관리업종 등으로 용어를 변경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곧바로 답했다. 또 지점장의 권한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행장의 한도차등화 등을 검토해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강행장과 임원들의 성의있는 답변에 신이 난 중기인들은 강행장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한 중소기업 CEO는 “다른 은행장들은 몇몇 중기 CEO를 불러 밥 사주고 돌아가는데 기업은행은 모든 임원들이 내려와 긴 시간동안 성의껏 설명해주고 함께 시간을 지내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은행장과의 대화가 끝난 후 강행장은 “다시 말하지만 비올 때 우산을 뺏지 않겠다. 비올 때를 예측해 사전에 준비하도록 하겠다”며 “여러분들이 기은의 터전이고 기은의 존재이유”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강행장은 이날 자신의 ‘일기예보’론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긴 우산을 선물로 준비했다.

■오전 11시30분. 4시간의 세미나가 끝난후 강 행장은 곧바로 인근 남동공단에 있는 중소기업체로 향했다. 강행장이 방문한 곳은 다이아몬드 공구 제조업체인 금성다이아몬드. 국내서 공업용 인조다이아몬드를 첫 생산한 기업이다.

강길박 사장은 “부친이 일제 때 사업을 시작했고 다시 공장을 세운지 37년이 됐다. 전에는 오래 기업한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이제는 이만큼밖에 못한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친구들을 보면 차라리 부동산에 뛰어들 걸 후회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강행장은 “부동산 사업으로 번 돈과 제조업으로 땀 흘려 번 돈은 질이 다르다”며 강사장을 위로했다.

강사장은 “한 때 중국진출을 고려했으나 이젠 뜻을 접었다. 한국에서 아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겠다”며 3대를 잇는 다이아몬드 가문이라고 자랑했다. 이 회사는 주거래은행이 다른 은행이지만 이날 강행장 방문을 계기로 기업은행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생산현장 방문시간. 강행장은 공장 직원들에게 “안녕하세요. 고생많으십니다”를 연발하며 생산과정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 직원이 “은행장이 직접 방문해줘서 영광입니다”라고 하자 “강행장은 현장을 열심히 돌아보면 은행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부품용 다이아가 가득찬 창고에서 “저걸 도둑이 훔쳐가면 어떡하죠?”라고 강행장이 묻자 직원은 웃으며 “2중, 3중 장치를 해서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기를 살리기 위한 강행장의 릴레이 투어는 29일까지 계속된다.


/동행취재=이장규 금융부장

/정리= scoopkoh@fnnews.com 고은경기자

■사진설명

강권석 행장이 인천 남동공단의 금성다이아몬드를 방문, 강길박 사장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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