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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가아프가 본 세상]극단으로 치닫는 현대인에 대한 경종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1.26 12:29

수정 2014.11.07 22:21


현존하는 미국 작가 중 가장 대중적인 작가 군에 속하는 존 어빙(1942∼)의 첫 번째 베스트셀러 ‘가아프가 본 세상’(1978)은 “우리 모두가 가망 없는 환자들이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현대의 작가들이 현실의 총체적인 묘사를 포기하고 현대의 소설들이 더 이상 스토리와 플롯의 절대성에 목을 메고 있지 않는 반면에 그의 소설들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무궁무진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더욱이 그의 소설 속에서는 현대사회의 모순이 단지 익명적인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각자의 일상적인 삶 자체가 바로 모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주인공 가아프의 눈으로 바라보는 바깥세상에 대한 작가의 서술 방식은 항시 그로테스크하고 비일상적이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들 모두가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뉴햄프셔 태생의 존 어빙은 난독증 때문에 책읽기에 장애가 있었으나, 어려서부터 몰입하였던 아마추어 레슬링에서 익힌 인내와 반복, 불굴의 의지를 통해 모든 장애를 이기고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가아프가 본 세상’을 비롯해 어빙의 많은 소설들에서 레슬링 연습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 싶다. ‘가아프가 본 세상’은 작가 T.S. 가아프와 그의 페니미스트 어머니 제니 필즈의 삶을 다루고 있다. 간호사 제니 필즈는 남녀간의 애정행위에 대해서는 혐오하여 결혼 없이 아이를 갖고자 한다.
그리하여 가아프는 그녀와 제2차대전에서 뇌가 손상된 병상의 군인과의 기이한 관계를 통해서 탄생하게 된다.

제니는 가아프의 교육을 위해 뉴햄프셔의 사립학교로 직장을 옮기고, 거기에서 가아프는 자신의 레슬링 코치의 딸인 헬렌과 사랑에 빠진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가아프는 학교를 마치고 보다 넓은 견문을 얻기 위해서 유럽행을 택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가아프를 기다리는 것은 어머니 제니 필즈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성공이었다.

제니는 자서전 ‘섹스의 이단자’를 출간하여 페미니스트 운동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었다. 이제 헬렌과 결혼하여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작가로서의 명성도 얻은 가아프는 어머니를 둘러싼 급진 페미니스트들, 특히나 강간당하고 혀를 짤린 소녀를 기려 스스로 혀를 잘라버린 급진페미니스트들과의 마찰을 겪고, 부인의 외도를 목도한다.

부인의 외도는 사고로 까지 발전하여 한 아이는 죽고, 다른 아이는 눈 하나를 잃게 되어 파경에 이른 가아프의 가정은 셋째아이의 탄생으로 다시금 화목한 가정이 된다.
그리고 헬렌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모교의 레슬링 코치 자리를 가아프가 대신 맡는다. 모든 것이 예전처럼 정상이 되고 모두다 일상의 행복에 겨워하는 찰라 급진페미니스트가 쏜 총탄에 가아프는 레슬링 체육관에서 절명하고 만다.
결국 모두가 가망없는 환자들이었던 것이다.

/김영룡(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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