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쓰나미’ 지구촌 묶는 기회로/조지프 스티글리츠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1.30 12:30

수정 2014.11.07 22:10



아시아에 엄청난 재난과 인명 손실을 가져온 쓰나미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쓰나미는 세계화의 힘을 입증했다. TV는 파괴 현장을 담은 영상을 전세계 안방에 생생하게 전달했다. 사실 이런 때야말로 세상이 정말 ‘지구촌’처럼 보이게 된다.

물론 엄청난 규모의 파괴 소식이 조지 부시 대통령이 쉬고 있던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 이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러나 마침내 부시 대통령도 휴가를 포기하고 쓰나미 피해국에 구호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려는 세계적인 경쟁 속에서 미국은 구호금을 여러 차례 늘렸다.

미국 경제력의 몇 분의 1에 불과한 나라들의 지원금과 비교할 때 미국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도움을 베푸는데 인색해 보였다. 인구가 적은 호주는 미국 지원금의 두배가 넘는 구호금을 냈다. 일본은 미국보다 50%를 더 내기로 약속했고, 유럽은 5배 이상을 다짐했다. 많은 이들은 이같은 현실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일반적으로 해외원조에는 가장 지독한 구두쇠라고 생각하게 됐다. 미국이 전쟁과 국방비에 투입하는 금액과 비교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번 재난은 범세계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이 앞장서서 구호지원을 조율하는 것이 당연했다. 불행하게도 미국은 해당 지역과 유엔이 펼치고 있는 노력을 무시한 채 구호작업을 펼 ‘핵심그룹’을 이끌려고 했다. 이는 다자주의를 훼손시키려는 미국의 또 다른 시도로 인식됐다. 동기야 어떻든 미국은 나중에 현명하게 유엔의 구호 노력에 동참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른 구호 노력이 없기에 서둘러 핵심그룹을 모으려 했다는 부시 행정부의 체면 살리기용 수사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해당 지역 몇몇 나라들의 반응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부 운영 측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올랐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갖가지 대응책을 마련했다. 태국은 피해 지역에 각국 대사들을 보내 해당국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항을 챙기도록 했다. 현금과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귀국을 도왔고,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사체 신원확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체보관용 자루와 냉동창고 시설 부족의 어려움도 해결했다.

태국처럼 스스로 구호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은 도움의 손길을 다른 나라로 돌릴 것을 요청했다. 그들은 오직 한가지만 요구했다. 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해외시장 판로를 더 넓혀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동냥을 원한 것이 아니라 단지 소득을 올릴 기회만을 원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칼럼을 쓰는 시점까지 반응은 싸늘할 정도로 묵묵부답이었다.

한편 서방 선진7개국(G7)은 쓰나미 피해국의 부채상환을 연장하는 정말 중요한 지원을 제공했다. 이것은 특히 1320억달러의 빚을 갚아야 할 인도네시아에 아주 중요하다(이중 700억달러는 국제 금융기관에 빚을 지거나 정부 기관이 보증한 것이다). 쓰나미 피해가 없더라도 이 빚은 인도네시아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될 판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지금에야 비로소 지난 97년의 경제위기 여파에서 벗어나려는 시점이다.

사실 어떤 경우에도 인도네시아 부채상환을 유예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다. 인도네시아 부채의 대부분은 부패한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대출에서 발생한 것이다.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그 돈 전부가 인도네시아 발전에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는 알았어야 했다. 더욱이 일부 부채는 지난 97∼98년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것인데 당시 위기는 IMF가 강요한 정책때문에 악화되고 깊어졌다.

자연의 힘을 예방하거나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우리는 자연의 힘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지금은 개선된 쓰나미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한 분야, 즉 지구 온난화 분야에서 조기경보를 접수한 상태다. 대부분 국가들이 이를 인식하고 뭔가 조치를 취하기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일본) 교토에 모였지만 충분치 못했다. 그래도 교토기후협약은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첫 출발의 의미가 있다. 슬픈 일이지만 지구 온난화는 쓰나미에 유린당한 바로 그 나라들 중 일부를 파괴할 가능성이 크다. 몰디브 같은 저지대 섬들은 가라앉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지구촌에 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계 최대의 오염배출국인 미국은 처음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트집잡더니 이제는 기업에 자발적인 억제를 요청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자발적인 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는 최소한 미국에는 없다. 국제사회는 지구촌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탈선 국가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낙관주의자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현실주의자들은 환경과 기술 사이에 벌어지는 장기전에서 지금까지 기술이 지고 있다고 본다.
우리가 쓰나미 참사를 통해 깨달았듯이 자연은 나름대로의 시간표를 갖고 있다. 자연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배(boat)를 놓치게 될 것이다.


/정리= cameye@fnnews.com 김성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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