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철강 대기업인 현대INI스틸의 K과장은 최고경영자(CEO)인 김무일 부회장으로부터 한권의 책을 선물받고 깜짝 놀랐다. CEO로부터의 책선물도 이례적이거니와 책의 종류도 이희숙 시인의 ‘고호 가는 길’이라는 서정 시집이었던 것. CEO들이 경영관련 에세이 등의 책을 선물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시집과 같은 서정적 도서류를 선물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알고보니 김부회장은 평소 유화를 즐겨 그릴 뿐만아니라 직접 쓴 시를 비(碑)로 만들어 자신이 장교로 복무했던 김포 지역의 ‘애기봉’에 헌사할 정도로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
K과장은 “평소 해병대 출신에다 지난해 충남 당진공장 인수를 진두하는 등 강한 카리스마 이미지의 김부회장이 이런 섬세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적지 않게 놀라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던 CEO와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불황의 늪에서 다소 경직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특유의 부드러움과 인간적 측면으로 극복해나가는 CEO들의 ‘감성경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시집,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의 앙증맞은 선물공세에서부터 결혼기념일 축하핸드폰 메시지, 국토 순례 등의 깜짝 이벤트를 통해 CEO가 먼저 몸을 낮춰 직원들의 눈높이에 맞춰가는 ‘직원 감동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철강기업 CEO인 동국제강의 장세주 회장. 그는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때 대리급 이하 직원들에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물하는 깜짝 이벤트를 연출해 직원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만능스포츠맨인 장회장은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노 보드’를 겨울철마다 즐긴다. 임직원들에게도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는 탁월한 신세대 감각으로 직원들과의 거리를 한층 좁히고 있는 중이다.
평소 냉철한 ‘재무통’출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LG산전의 김정만 사장도 최근 회사의 흑자전환에 즈음해 ‘감성적 CEO’로서의 이미지 변신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설날 연휴 핸드폰 메시지를 전직원에게 전달, 직원들을 감동시킨데 이어 직원들의 결혼기념일에도 축하메시지를 전달해 또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회사관계자는 “가정도 일터의 연장이라는 평소 경영철학과 직원들에 대한 애정을 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LG산전이 LG전자에서 ‘노경관계’라는 개념을 만들며 LG전자의 혁신적 노사관계에 크게 기여한 한만진 전무를 회사의 기획 및 홍보임원으로 영입한 것 역시 이같은 직원들과의 벽을 허물기 위한 연장선상에서 해석되고 있다.
‘인수합병(M&A)의 귀재’라 불리는 두산그룹 박용만 부회장은 바쁜 일정 중에도 직원들과 함께 ‘국토 도보 순례’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배땅 프로젝트’(배오개에서 땅끝까지)로 불리는 국토순례는 109년 전 전남 해남에서 보부상으로 자본을 축적해 서울 종로 배오개에서 포목점을 열었던 할아버지(고 박승직 회장)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며 그룹의 뿌리를 찾는 역사 기행이다.
함께 여정에 참여한 한 직원은 “CEO와 함께 여행을 같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기회”라며 “CEO와 함께 그룹의 뿌리와 상혼 체험을 하며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코오롱그룹의 이웅열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임원 100여명에게 ‘네잎클로버’를, 최태원 SK회장은 싸이월드의 100개짜리 도토리 상품권,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은 지난 연말 전임직원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는 등 이색적이고 앙증맞은 선물을 통해 ‘직원 감동 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경제불황이 길어지고 사회 각개 각층에서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때 갈등의 뿌리를 해소할 사랑과 포용의 CEO 리더십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고 말했다.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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