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나가는 증권사 영업맨으로 일하면서 성과급을 포함, 연봉 9000만원 가까운 고소득을 올렸던 이모씨(39).
지난해 11월 요식업 중앙회 소속 회원 3만여명이 서울 여의도에 모여 솥단지를 내던지며 절망감을 토로할 당시 이씨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는 2년전 다니던 증권사가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회사를 그만뒀다. 명퇴금에 집을 전세로 옮겨 마련한 자금을 보태 호프집을 개업했지만 계속되는 경기부진 속에 월세 250만원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지난해 말 문을 닫고 말았다. 물론 초기에 들어갔던 거액의 권리금 회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지난해 5월 초 다니던 무역회사를 퇴직한 박모씨(42). 그는 퇴사전부터 준비한대로 서울 대학가 인근에 돈가스 전문점을 차렸다. 하지만 여름철 비수기와 겹치면서 사업은 초기부터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 가을, 겨울이 지나면서 매출이 조금씩 늘기는 했지만 300만원에 달하는 월세내기도 버거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달초 사업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자영업으로 대표되는 소상공업 문제가 날로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시장진입이 자유로운 특성상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이로인해 업체들의 매출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잉공급이 소상공인 위기불러
외환위기 직후 직장을 잃은 중장년층이 앞다퉈 창업에 나서면서 자영업자를 비롯한 생계형 소상공인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98년 말 445만명이었던 소상공인의 수는 2002년 말 514만명으로 불어나 불과 4년사이 70만명(15%) 이상 급증했다. 소상공업체 수도 지난 98년 240만개에서 지난 2002년 말 현재 262만개로 22만개(10%) 이상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3년 말 기준 국내 총 취업자 2200만여명 중 자영업자의 수는 774만명(35%)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2002년 말 기준 일본(16%), 영국(12%), 독일(11%), 미국(7%) 등과 비교했을 때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5배 이상 높은 수치다. 생계형 자영업자가 과잉공급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생계형 소상공인의 수가 큰폭으로 증가한 것은 업종 특성상 별다른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 없는 소자본창업이 가능하다는 점 외에도 실업해소 차원에서 이뤄진 무차별적인 창업자금 지원도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번 퇴출당하면 재진입이 어려운 정규직 노동시장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소상공인 위기 사회 문제로 비화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월평균 실질 근로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자영업자의 비중은 지난 98년 33.8%에서 지난 2003년 41.2%로 급증, 저소득 자영업자의 비중이 큰폭의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당시보다 악화됐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사례라 하겠다.
특히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의 소득감소는 대량 신용불량자 양산과 이들의 도시 빈민화 우려마저 자아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개인사업자에 대한 대출잔액은 지난 2001년 말 47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89조9000억원으로 증가해 불과 3년 만에 88.5%이상 급증했다. 가계 대출로 분류된 부분까지 감안한다면 금액은 훨씬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의 소득 양극화 문제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는 자영업자와 임금근로자들의 소득 상황을 비교했을 때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최근 발표된 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평균 소득의 최상위에는 임금근로자(2003년 6.4%)보다 자영업자(2003년 10.2%)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최하위층의 경우도 자영업자(2003년 14.3%)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 자영업자의 소득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함께 최하위 소득계층에 속하는 상당수가 60세이상 고령이거나 여성들인 것으로 조사돼 이들에 대한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 절실
이처럼 소상공인의 위기가 자유로운 시장진입에 따른 과잉경쟁에서 발단된 만큼 정부도 무차별적인 창업자금 지원보다는 선별적인 지원과 소상공인지원센터의 기능 보강 등을 통해 수준높은 직업안정서비스와 컨설팅 업무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계명대 김영문 교수는 “직업교육의 대상을 영세 자영업주와 소상공인들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임금근로자와 동등한 조건으로 노동시장 정착을 지원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상공인지원센터가 제기능을 다하기 위해선 인근 지역 대학내 창업보육센터와의 연계를 통해 시설 및 교육인력 등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구조조정을 통해 소상공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유망업종으로의 사업전환 대책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상당수 소상공업은 규모의 영세성과 경영방식의 전근대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협상력과 신뢰도 부족으로 판로 개척 및 매출 확대에 애로가 있을 뿐 아니라 대량 구입 및 대량 생산체제 구축이 어려워 규모의 경제를 누리기도 어려운 상태다.
과잉공급된 소상공인의 임금근로자 전환책 마련과 금융부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방안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연구원 한기윤 전문위원은 “잉여 인력들에 대해서는 일자리 나누기나 임금 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임금근로자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금융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적보증 등을 통한 대출만기 연장도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올해 1만개 유망 소기업들에 지역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5000억원을 특례보증형태로 지원키로 했다. 특히 소상공인 지원에 지난해 3500억원보다 1600억원(40%) 늘어난 5100억원을 책정해 놓은 상태다.
/ dskang@fnnews.com 강두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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