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의 전면개방을 다시 유예하는 대가로 다른 품목을 연계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정부가 중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사과 배 등 과일 수입 해금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중국이 요구한 수입위험평가(검역)를 당장 시작하더라도 소요 기간이 길고 그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입이 불허될 수 있다며 과수농가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정부가 당초의 약속을 저버린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쌀 관세화 재유예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는 정부가 이를 얻어내기 위해 개별 협상국들이 요구하는 다른 품목에 대해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은 일단 수긍할 수 있다. 상대방의 요구를 적절히 들어주는 대신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 협상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는게 당연하다. 이번 협상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국회비준 동의절차를 불과 1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양보한 내용을 밝힌 것은 정부 협상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과수농가에 미치는 영향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도 과일시장 개방과 관련해 한차례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지만 중국산 사과 배 등의 수입 허용이 국내농가에 미치는 영향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중국은 칠레와 달리 거리가 가까워 신선도 유지나 운송비 등에서 훨씬 유리한데다 가격도 국내산의 절반이 안되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사과와 배를 키우는 농가는 9만여가구로 전체 과수농가의 36%에 이른다. 이미 채소류나 곡물 등에서 중국산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휩쓸고 있는게 현실이고 과일 시장도 같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수농가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협상 과정과 자세다.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동남아국가연합 9개 회원국을 비롯, 캐나다와도 자유무역협정(FTA) 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정부가 이번과 같은 협상 자세를 유지한다면 신뢰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협상에 들어가기 앞서 전체적인 틀을 먼저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국내의 이해당사자들이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게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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