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는데 앞이 온통 뿌옇다. 오랜만에 안개가 사방을 뒤덮은 것이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가는데 더럭 겁이 났다. 평소에도 주의를 요하는 길인데 안개가 끼니 더욱 거북이 운행을 하게 만들었다.
언제인가 정말 10야드 앞도 안 보이게 안개가 낀 날이 있었다. 운 좋게 3명의 고객을 모시는 날이었는데 티잉 그라운드에서 손님들의 대화를 듣고 ‘오늘 죽었다’라고 생각한 날이었다. 그 고객들의 대화는 이랬다.
“어우, 어쩌지?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그러게, 볼이나 보일까 몰라.”
“여기 풍경 되게 좋다던데 어디가 어딘지 보여야지.”
“처음 온데라구 지금 텃새부리는 건가?”
‘헉… 처음 온데라구? 사방 10야드도 안보이는 이런 날에 처음 온 고객과의 라운드라니…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며 라운드를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매너들이 너무 좋아서 방향 제시를 하는 대로만 치며 아주 수월하게 플레이를 하는 것이었다. 단지 계속 아쉬워하는 것이 있었으니.
“동생 놈이 이 골프장 경치 좋다고, 정말 잘 해놨다고 해서 왔는데 이러다가 라운드 끝날 때까지 못 보고 가는 건 아닐까요?”
“그러게 여기 잔디도 좋다고 소문 났는데…, 아∼ 아쉽다.”
그래서 밝은 분위기로 이끌어보고자 내가 한마디를 했다. “걱정마세요. 제가 위에(하늘을 가리키며) 아는 분이 있어서 전화해 놨거든요. 아마 나인홀을 돌 쯤이면 다 걷힐 거예요. 그렇게 얘기 해놨어요.”
“하하하. 어엇 그래요? 언니가 전화해 놨다니 확실하겠네.”
하지만 안개는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와아∼ 보이니까 좋다.” “야아∼ 이 홀 도그레그인가봐.”
“드디어 개는구나” “엇∼ 또 안개네,”
“앗… 보일 때 빨리 쳐라!” “그래 너 먼저 준비해.”
고객들의 개그 같은 대화를 들으며 재밌게 플레이를 했고 안개는 정말로 나인홀이 끝날 즈음 깨끗하게 걷혀 있었다.
안개 낀 날의 라운드는 볼을 몇 개씩 잃어버려 속상하기 일쑤인데 이날은 예외적으로 라운드가 끝나도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윤미란(홍천 대명비발디파크 경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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