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력 20년에 핸디캡 10으로 한동안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무역업자 정모 사장은 현재는 구애의 대상이 골프에서 마라톤으로 바뀌었다.
누가 보아도 골프를 할만한 경제 여건을 두루 갖춘 부동산업자 김모씨는 골프장, 골프 연습장 부지 매매 등 골프를 매개로 한 경제 활동에는 열을 올리지만 골프의 ‘ㄱ’자도 모를 만큼 완전히 담을 쌓고 그 대신 등산으로 건강을 챙기고 있다.
그렇다면 골프 마니아건 그렇지 않건 간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골프를 놓거나 아니면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골프는 운동량이 부족해 건강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까닭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 예찬론자들은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운동 중에서 골프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러한 견해는 적어도 전동카트가 국내에 도입되기 이전인 지난 90년대 초반까지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그러한 주장이 유효한 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 저을 수밖에 없다.
흔히들 걷는 것만큼 건강에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만보 걷기’는 건강한 생활을 위한 바로미터로 인식되고 있다. 정적인 골프가 그나마 건강에 좋다고 인식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점 때문이었다. 만보기로 측정한 결과 18홀 라운드를 끝내고 나면 핸디캡별로 약간의 차가 있긴 하지만 대개 1만∼1만1000보를 걷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18홀 내내 전동카트를 타지 않았을 경우에 해당된다.
국내에 전동카트가 도입된 것은 지난 90년대 초반이다. 캐디라는 직업이 3D 직종으로 분류돼 캐디 수급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나타난 신풍속도다. 이로써 전통적 시스템이었던 1캐디 1백 제도는 국내 골프장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전동카트 시스템이 그것을 대신 하게 된다. 처음에는 보수적 성향의 골프장들이 이의 도입에 주저했지만 몇몇 골프장이 시범적으로 운영해 효과를 보면서 불과 5년 사이에 전국의 골프장들이 이를 경쟁적으로 도입, 현재는 거의 모든 골프장이 이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당시 모든 기종의 카트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외화 유출 또한 막대했다.
골프장 입장에서 이 시스템은 캐디 관리를 원활하게 하고 경기진행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사용료 징수로 상당한 수입원이 되는 등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골프장들이 분명히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골프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그 가치를 둬야 한다는 것을.
걸을 것인가, 전동카트를 이용할 것인가. 이제는 그 선택권을 골퍼들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 그리고 골퍼들도 라운드시 가급적 걷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골프는 스포츠가 아닌 유희(遊?)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적’ 골프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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