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터키를 방문했을 때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일부 한국 사람이 걱정”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또한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언급도 있었다고 한다. 더 구체적인 부연설명이 없으니 발언의 깊은 뜻은 알 길이 없으나 ‘민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국인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어떠한 이념을 가진 정치세력이라 하더라도 민족을 내세우지 않고 성공한 사례는 없다. 우파 보수세력은 물론이고 좌파 정치집단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기치를 배신할지언정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민족을 배신하고는 살아남은 전례가 없다. 오죽하면 북한 정권조차도 ‘우리식 사회주의’를 부르짖었겠는가. 남한의 지나간 정권들도, 그 정권에 반대하던 민주화 운동세력도 민족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현 정권도 적어도 이 점에서는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거기다 일이 되려니 때마침 독도영유권 문제와 교과서 왜곡 문제까지 겹쳐 민족은 다시 한번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이런 마당에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한국 사람’ 이야기는 평균적 정서를 가진 한국인의 피를 끓게 만든다.
그런데 잠시 감정을 다스리고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민족이란 참으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일뿐더러 결코 보편적 가치가 될 수도 없는 개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천년 단일민족이라고 배워왔건만 그렇다 해서 이민족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섞이긴 했지만 많이 섞이지는 않았다는 뜻인가. 얼마나 많이 섞여야 많이 섞인 것이고 얼마나 조금 섞여야 아직까지 단일민족이라고 인정해줄만 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더 나아가서 민족이란 도무지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같은 민족인지 아닌지는 출생시에 결정되는 것이고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속한 민족을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출생시에 귀속적으로 결정되고 본인의 노력과 성취에 의해서도 바뀔 수 없다는 점에서 민족은 과거의 신분제도와 마찬가지로 전근대적인 개념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일단 민족을 배신했다는 낙인이 찍히면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친미’라는 단어는 민족적 자존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단어의 본 뜻이야 미국과 친하다는 말이니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 함의는 ‘민족을 배신하고 힘센 놈 편에 붙는’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냥 친미도 아니고 ‘미국 사람보다도 더 친미적’이라니 적개심의 크기는 더욱 커질만 하다. 다시 한번 감정을 다스리고 찬찬히 생각해 보자.
‘친미’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과 다른 나라가 축구경기를 할 때 친미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미국을 응원할 터인데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때 혈맹이라고까지 했던 오랜 우호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축구경기를 하는데 미국을 응원하는 경우다. 아무리 오랜 동맹이기로서 이 상황에서 미국을 응원한다면 한국 감독은 속이 탈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발언이 있었던 같은 장소에서 노대통령이 스스로 말했듯이 현 정권은 “한·미동맹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다른 말로 지금의 상황은 한국과 미국이 맞붙어 경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친미가 왜 문제가 되나. 친미적인 한국 사람이 문제라는 주장과 한·미동맹에 이상이 없다는 주장은 동시에 양립할 수가 없다.
저간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주한미군 문제부터 시작해서 최근 잇달아 불거지고 있는 한·미관계의 마찰음, 그리고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들로 인한 불편한 심기가 그 배경이 된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은 ‘친미’나 ‘반미’의 문제가 아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둘러싼 여러 비판들도 한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과연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방법론’의 문제이고 ‘정책’의 문제이지 ‘친미’나 ‘반미’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을 친미라고 낙인찍는 것은 더구나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화두인 ‘민족’을 들먹이며 낙인찍는 것은 균형을 잃은 처사다. 더구나 한국은 동북아의 균형자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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