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이 싱은 무명 시절의 오점이 있다. 부정행위를 했다는 얘기다. 피지 출신인 싱은 이름으로 보아 인도계이자 시크교도의 후예인 것 같다. 과거 영국은 많은 인도인들을 피지 개발을 위해 이주시켰다. 그러나 사소한 실수나 인간성의 편린만 가지고 한 사람의 전체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조건’의 작가 앙드레 말로는 젊은 시절 앙코르와트 사원을 뒤적거리다 도굴범으로 체포된 적이 있다. 말로는 몰락 부르주아 가문의 출신으로 고고학 전공자였다. 작품 소재를 위해서였는지, 고고학적 관심 때문이었는지, 돈벌이를 위해서였는지, 혹은 그 모든 것을 합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범법을 행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드골 정권 때 문화부 장관을 지낸 그는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문화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도굴범과 문화 장관은 전혀 어울리지 않으나 상황과 시대에 따라서 인간의 역할은 달랐던 것이다.
쉰들러리스트로 영화화된 유태인의 구세주 오스카 쉰들러는 주방 기구를 군납하는 장사꾼이었다. 그는 독일군 고위층에 뇌물을 뿌려 자기 공장의 유태인들을 구했다.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암거래의 명수였다. 그리고 그는 바람둥이였다. 그의 부인은 “정부(情婦)가 한명이면 질투라도 하겠지만 100명의 여자를 일일이 질투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라고 푸념했다.
닉슨 대통령은 불세출의 전략가였다. 소련과 대립한 중공을 유인해서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펼친 현대판 제갈량이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때문인지 인간 닉슨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역사가 대니얼 쇼는 “위대한 비전을 가졌지만 모사꾼”이라고 비평했고, 연설문 담당자였던 윌리엄 사파이어는 “7층짜리 케이크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대했다”고 회고했다.
쉰들러나 닉슨이나 가치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가치 혼돈자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성공도 했고 실패도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명나라의 여곤(呂坤)은 “난국에는 파탄자를 쓰는 것이 인사 원칙”이라고 극언을 한 것 같다.
/김철대표이사(뉴서울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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