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박찬욱 감독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직후 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복수극을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가 드디어 일반에 공개됐다. ‘13년 동안 감옥에 수감됐던 여인이 출소 후 복수를 감행한다’는 한줄짜리 컨셉트와 줄곧 단아한 이미지를 선보였던 이영애, ‘올드보이’의 최민식 등이 복수의 주체와 대상으로 낙점됐다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정보가 차단된 때문인지 지난 18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2000여명의 영화관계자들이 몰리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복수는 나의 것’(2002년), ‘올드보이’(2004년)에 이은 이른바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인 ‘친절한 금자씨’는 여전한 스타일 과잉을 고수하고 있지만 ‘올드보이’에 비하면 덜 장식적이고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하면 잔혹함의 정도가 다소 약화된 듯한 느낌이다. “좀 더 우아한 분노, 고상한 증오, 섬세한 폭력을 도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친절한 금자씨’는 처절한 복수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혹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속죄 행위로서의 복수와 영혼의 구원이라는 좀 더 큰 테두리의 이야기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혹자는 속죄로 방향을 급선회한 이번 영화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이는 ‘얼음의 영화’(복수는 나의 것)와 ‘불꽃의 영화’(올드보이)를 모두 감당했던 박 감독의 확고부동한 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도는 이태리 타올이야. 아기 속살이 될 때까지 빡빡 문질러서 죄를 벗겨 내”라고 말하던 금자씨가 출감하자마자 유괴했던 아이의 부모 앞에서 속죄의 뜻으로 손가락을 자른다든지, 처절한 복수극을 치른 뒤 생뚱맞게 새하얀 케이크(그는 출소 후 제과점에서 일한다)에 얼굴을 파묻고 울부짖는 장면 등은 죄를 씻고 싶어도 씻을 수 없는 자에 대한 연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는 배우 이영애와 최민식의 변신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준다. 악의 대명사로 설정된 백선생 역의 최민식은 완벽한 악인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다소 시간이 모자란 듯한 느낌이지만 조연에 불과한 악역을 과감히 맡은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에 비하면 이영애의 변신은 눈부시다. 이번 영화는 이영애에 의한, 이영애를 위한, 이영애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감독도 실제로 “이번 작품은 이영애라는 배우에게 맞춰지는 영화”라면서 “익숙한 이영애와 낯선 이영애가 이번 영화에는 공존한다”고 말했다.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익숙한 이영애’보다는 냉혹하고 시니컬한 ‘낯선 이영애’를 만날 때 관객들은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에는 또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등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카메오로 얼굴을 내민다. 이들의 등장은 ‘복수 3부작’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와 상업적 전략이 행복하게 만난 것으로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와 신하균은 청부살인업자로, ‘올드보이’의 강혜정과 유지태는 뉴스 앵커와 유괴된 어린이의 환영으로 잠깐씩 모습을 비춘다. 18세 이상 관람가. 29일 개봉.
/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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