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일반

[한국 영재교육의 산실 민족사관고등학교]국어·국사빼곤 모두 영어수업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7.26 13:31

수정 2014.11.07 16:01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전국 중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대단한 관심을 끌고 있다. 국내 고교는 물론 세계 어느 고등학교에 견주어도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설립 9년에 불과한 이 학교가 국내 최고의 고교로 자리하기 까지의 과정을 알아본다.

민사고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 덕고산 기슭에 자리했다.

이 학교의 창시자는 최명재 회장이다. 그는 파스퇴르유업을 설립한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일제치하에서 교육을 받아 일본을 잘 알고 있다. 작은 나라 일본이 2차세계대전 때 패권을 노렸던 근원은 오로지 산업화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다.
최회장은 일본 성장의 원동력이 정치력에서 나왔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산이고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배워야 하고…. 이것이 바로 학교를 설립하게 된 근본 정신이다.

◇자율적, 선진적인 학사운영=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왼편에는 정약용 선생의 동상이, 오른편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민족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동상들이다.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곳에서 배출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민사고는 ‘노벨상 수상자 흉상 예비좌대’를 마련해 놓았다. 민사고에는 교무실도, 교실도 따로 없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연구실을 찾아가 수업을 받아야 한다.

또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최소 2종류 이상의 전통악기를 배워야 한다. 국궁은 학생들이 꼭 거쳐야 할 체육 필수과정이다. 원어민 교사의 영어수업은 당연하고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모든 수업도 영어로 진행된다. 도서관은 연구와 학습의 중심이다. 교양과목으로 채택된 널뛰기·그네타기·씨름·제기차기 등은 전통 민속놀이를 통해 민족혼을 자연스럽게 고양시킨다. 물론 각 교과 수업에 있어서 실기와 이론를 접목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또 소수 정예로 구성된 것도 교육과정의 특징이다. 교사 60명에 1·2학년은 150명씩 300명이고 3학년은 60명이다. 교사 대 학생 비율이 1대 6에 불과하다. 계열은 2개다. 국제계열(유학반)과 국내계열(민족반)이 그것이다. 국제계열은 해외 명문대를, 국내계열은 국내 유수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게 민사고의 특징이다.

국제반에 소속된 학생들은 올해 전원 해외 명문대에 입학했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이 학교 출신자들에 대해 유난히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민사고 출신 학생들이 기계문명에 찌들지 않고 학문적·육체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유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계열 학생도 원하는 국내 유수대학에 어김없이 입학했다.

◇민사고,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대에 서=지난 96년 3월에 개교한 이 학교는 이듬해 11월에 위기를 맞는다. 이른바 IMF 외환위기가 이 학교도 덮쳤기 때문이다. 민사고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던 파스퇴르유업이 경영차질을 빚은 게 커다란 원인이었다. 내부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이 더 컸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파스퇴르유업의 고품질·고유가 마케팅 전략은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구매력을 잃기 시작해 급기야 98년 1월31일 부도와 직면한다. 외환위기 3개월 만에 알토란 같은 민족기업이 무너졌다.

◇민사고를 살려내려는 고육지책=환란이 겹치고 학교 경영이 어려워지자 당시 교사 29명 전원은 월급을 반납했다. 학부모들도 1인당 90만원씩을 갹출했다. 전국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성금이 답지했다. 장학금 중단에 따른 뼈아픔이 녹아내린 순간도 있었다. 1기생 30명 가운데 19명이 중도 하차한 것이 그것이다. 2학년생은 11명뿐. 이런 와중에서도 11명 가운데 4명이 입학 2년 만에 한국과학기술대(KAIST)에 진학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는 나머지 7명과 신입생 39명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활력소로 작용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민사고 학생들은 KAIST가 주최하는 ‘먹이사슬 알고리즘 만들기’, ‘화성생물 상상하여 그리기’ 등 각종 과학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와는 별개로 학교 이사진은 학교 재정 전반에 메스를 가하기 시작했다. 전원 장학생제를 유보하고 일정액의 기숙사비를 부담시켰다. 지난 2003년부터는 연 1500만원의 학비를 납부토록 제도를 바꿨다. 학교 재정 확보를 위한 기본틀을 쇄신한 것이다. 1500만원 가운데 월 82만원은 기숙사비로 충당되고 나머지는 등록금과 특기적성 교육비로 지출된다.

◇누가 뭐래도 민족사관고는 세계로 간다=이 학교가 개교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고교를 졸업하고 해외 유명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내 대학을 졸업했거나 다니던 중 미국 등 각국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아 진학하거나, 미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현지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학교에 진학만 하면 세계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
지난 2004년까지 민사고는 334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이중 91명이 해외 유명대학에 진출했으며 나머지 243명의 학생이 국내 유명대학에 진학했다.

/ dikim@fnnews.com 김두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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