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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철기자의 개성 답사기]“가까워진 개성…버스타고 갑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8.31 13:37

수정 2014.11.07 14:36



【개성=장승철기자】처서를 넘어선 미풍이 옷깃을 파고든다. 이제막 동튼 햇살에 눈부셔 고개를 돌리니 오른쪽으로는 파주 헤이리 마을, 왼쪽은 통일동산이 차례로 스친다. 지금껏 북을 향해 밟아본 곳은 바로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법과 제도의 ‘시선’을 묵묵히 받아 들여야 하는 지구상 마지막 긴장터다.

지난 26일 오전 6시15분 서울 경복궁을 출발한 현대 아산의 1차 개성 시범관광단은 15대의 버스에 나뉘어 민통선, 도라산 출입사무소(CIQ)등을 지나 현재 북측 CIQ를 향해 진행중이다. 버스에서 나눠준 출입 명찰에는 목적지로 큼지막히 ‘고려’라 명시돼 있다.
이름만큼 낯선 곳이어서 그럴까. 짙은 안개속 이슬을 머금은 녹음은 남쪽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바라 보는것은 반세기 분단이 몰고온 아득한 이질감 때문일게다.

오전 8시15분 도라산 CIQ를 떠나 비무장지대를 가른 경의선 도로로 들어서니 버스는 이내 속도를 줄인다. 오른쪽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주인공인 녹슨 기관차가 수풀속에 뒤덮여 있고 그 뒤로 개성공업지구까지 5㎞라는 간판이 나타난다. 시속 20∼30㎞의 느린 속도로 달렸지만 북방 한계선 철문에 다다르기까지는 10여분. 그 짧은 시간에 서슬퍼런 이념의 골이 사려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버스에 동행한 현대 아산측 관계자가 “곧 인민군 병사가 탑승, 인원을 확인하니 자세를 바로 갖춰 달라”고 반농담을 던진다. 커다란 견장과 인민모자를 착용한 인민군 병사 2명은 굳은 얼굴로 말없이 탑승자 숫자만을 세고는 바로 내린다.

대부분 처음 보는 인민군 모습에 잠시나마 긴장하지만 신분과 소지품 확인을 위해 당도한 북한 CIQ내 인민군 모습은 침묵을 지키던 앞서와는 영 딴판이다. 고령의 개성 실향민에게 먼저 연세와 고향을 묻고, 허리굽은 할머니에게는 다가와 손을 내민다. 소지품 검색은 생각보다 간소한 편. 그러나 필름 카메라, 녹음기 등에 대해선 철저히 용도를 묻는다. 검색대 뒤에선 술, 담배, 과자 등 북한산 면세품을 판다. 민간인 복장의 북한 안내원 2명이 함께 탑승하고 버스는 다시 개성으로 달린다.

오른편으로 북측 최남단 마을 기정동이 지나친다. 개성시까지 3㎞라는 간판이 지나자 이내 개성공업지구로 들어선다. ‘우리은행’, ‘훼미리 마트’, ‘로만손 시계’ 등 얼핏 간판만 보기에는 남한모습이지만 교통요원, 인부들은 분명 북한 사람들이다. 말그대로 자본과 인력이 교차하는 남과 북의 첫 생산기지다.

개성공업지구를 떠나 10여분 달리니 버스는 곧바로 개성시내로 진입했다. 북쪽 송악산이 넓게 띠를 두르며 자리잡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넓다란 평지다. 도로는 깨끗하고 집들은 사회주의식 건축물 답게 한결같이 똑같고 가지런하다. 간혹 집집마다 창밖에 내놓은 꽃들이 인상적이다. ‘백화점’ ‘과실남새(청과상)’ ‘리발관’ 등은 평온히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 예상과 달리 시민들은 우리의 손짓에도 곧잘 답한다. 하지만 곳곳에 걸린 붉은색 혁명구호는 분명 다른 체제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오전 9시20분 관광단이 도착한 곳은 고려시대 성균관이던 고려박물관. 한민족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만큼 북한측이 중시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초입 마당에 놓인 30m 높이의 은행나무를 비롯해 청동종, 동탁, 공민왕릉 모형 등 갖가지 유물들이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채 조심스레 진열돼 있다. 미소지으며 유물을 설명하는 안내원의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본다. “개성사람들은 깍쟁이가 아니에요. 개성상인들이 예전부터 점포를 많이 갖고 있어 ‘가게쟁이’라 불렸던 것이 오늘날 ‘깍쟁이’로 불리게 된거죠.”

고려박물관에 이어 이동한 곳은 인근 선죽교다. 고려충신 정몽주가 자객에게 목숨을 잃은 곳으로, 바로 옆에는 충정을 기린 표충비가 세워져 있다. 또 다리위에는 정몽주가 흘렸다는 붉은 핏자국도 선명히 남아 있다. 당초 선죽교는 난간없는 석교였지만 지금은 울타리를 만들어 다리를 보존토록 해놓았다.

오전 11시30분 점심식사를 위해 인근 자남산 여관에 도착했다. 객실 50실로 민속여관과 함께 개성의 대표적인 호텔급 숙박업소다. 로비 정중앙에는 고 김일성 주석의 손님맞이 대형 사진이 걸려있고 외국인을 상대로 한 잡화품 코너가 왼켠에 마련돼 있다. 안내원의 말로는 중국인이 가장 많이 이곳을 찾는다고 말한다. 2층 연회장에 마련된 점심식사의 메뉴는 개성약밥, 콩나물국, 두부무침, 삼색나물 등 맛깔스런 토속음식이 주류다.

식사를 마치고 이동한 곳은 박연폭포. 개성시내를 벗어나 평양∼개성간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산성리 부근에 위치했다. 고속도로는 달리는 차량 없이 한산하다. 평양까지는 156㎞.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의 시골 풍경은 꽤 한적해 보인다. 민둥산이 간혹 보이며 옥수수밭은 의외로 자주 눈에 띈다.

오후 1시40분, 관광단이 둘러볼 마지막 코스인 박연폭포에 도착했다. 한국 3대 폭포라 불릴만큼 웅장한 굉음은 멀리 입구서부터 들린다. 폭포위에는 박연, 폭포 아래는 고모담이라 불리는 연못이 각각 있다. 폭포 오른쪽을 향해 10분간 언덕을 오르면 박연을 볼수 있도록 안전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 박연에 오르는 도중 개성 북문은 주변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 길따라 15분간 오르면 1000년 불상이 모셔진 관음사가 숲속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깝지만 멀수밖에 없는 곳, 송도삼절(松都三絶·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은 정감어린 정취를 안고 불현듯 우리를 이렇게 찾았다.
이를두고 개방의 물결이라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체제의 인정과 존중 그리고 민족의 화해만이 숭고한 자산을 기억하는 마지막 단초임이 다소 아쉬울뿐이다. 이념을 잠시 접고 고려의 숨결을 느껴보자. 송악을 호령하던 아득한 고려인의 기상이 지난 55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 sunysb@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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