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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첫사랑 독일의 가을]흑백논리에 젖은 70년대 독일의 사회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9.21 13:42

수정 2014.11.07 13:57



지난 1977년 가을 독일 사회는 요인 납치와 하이재킹, 그리고 이에 대한 보수 언론의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와 공권력의 무차별한 대응으로 야기된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로 음울한 몇 달을 경험한다. 알프레드 되블린 문학상을 수상한 미하엘 빌덴하인(1958∼)의 소설 ‘첫사랑-독일의 가을’(1997)은 소위 ‘독일의 가을’이라고 불리는 그 해 가을 독일 조야가 겪은 집단적 히스테리의 문제를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주인공의 첫사랑의 이야기에 실어 담담하게 그려낸다.

소설은 그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이르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마치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는 첫사랑의 뒤엉킨 기억을 재구성한다. 동급생중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아비투어를 치른 주인공은 여느 김나지움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정치적인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주인공은 두 명의 여인을 만나면서부터 서서히 잊혀져가는 68운동의 이념 대신에 언젠가부터 독일 사회의 정치적 이슈가 되어버린 폭력과 테러의 정당성문제, 이에 대응하는 보수언론과 공권력의 무자비성이 독일 사회의 여론을 양극화시키고 모두에게 단순히 흑백논리만을 강요하는 정치적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처음 사랑을 나눈 17세의 바바라와 좌파 극단주의 그룹에서 활동중인 열 살 연상의 여교사 마농, 이 두 여인을 사랑하는 주인공은 자연스레 그들의 사회적 앙가쥬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주인공의 친구인 �M 역시 마농을 짝사랑하고 적군파의 이념에 관심을 가진다.

작가는 주인공과 바바라, 마농, �M 사이에 자리잡은 감정의 실타래를 좇아서 마치 희미한 첫사랑의 추억처럼 이제는 가물가물한 그해 가을의 이야기를 뱉어내고 있다. 마치 성인이 되어서 첫사랑의 애잔함을 되돌아보듯이 말이다. 공교롭게 3명의 친구가 모두 그해 가을의 정치적 사건에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기에 어쩔수 없이 우리의 주인공은 그해 잔인했던 가을의 사건들을 체험하게 된다.

어느 누구보다도 비타협적이고 극단적이었던 바바라는 결국 폭력적인 사건에 직접 관련되어 체포되고, 가장 유토피아적인 사고를 추구하던 친구 �M은 가장 이상적인 정치적 프로그램을 생각하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용기와 실천력이 부족하다. �M은 자살을 감행한다.
주인공과 �M에게 사회적 앙가쥬망을 설파하던 여교사 마농은 결국 교직에서 �v겨날 것이 두려워 운동을 저버린다.

결국 치열했던 그 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돌아왔을 때 주인공은 다시 혼자다.
세 가지 상이한 인연으로 대변되는 세 가지 상이한 정치적 앙가쥬망의 길은 주인공에겐 이미 어긋나 버린 인간관계 마냥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해 보인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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