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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오서산 억새기행]가을 실어온 실바람…백발을 흔들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10.12 13:47

수정 2014.11.07 13:13



가파른 경사를 어렵사리 끝내니 눈앞에 펼쳐지는 아련한 억새물결이 춤을 추듯 반긴다. 사람이 그리워서였을까. 미련한 땀방울에 얼룩진 어색한 초행자는 억새들이 날아다준 가벼운 산들바람에 이내 기운을 차린다.

능선안부에서 오서정 그리고 정상에 이르는 대략 2㎞구간은 기이하게도 주변 녹지와 뚜렷이 구분되는 고산의 은빛지대다. 한치 가릴것 없는 청명한 하늘, 서해에서 밀려오는 싱그러운 바람, 그리고 눈을 지배하는 그윽한 산세는 오서산에 피어오른 억새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

오서산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 자리잡은 해발 791t의 전형적인 중부 능선. 과거 까마귀가 많이 살아 오서산(烏棲山)이라 불렸다지만 지금은 보이질 않는다. 정상부지를 이은 능선을 줄곧 따라 오르면 대천, 안면도 등 푸른 서해의 깊숙한 아치와 질펀한 해안 평야가 시야를 가득 메운다. 특히 산등성이를 따라 심겨진 억새들은 전설속에서 피어오를 가지런한 몸짓으로 고지대의 신비를 물씬 더해준다. 억새는 10월 중·하순을 기점으로 만발하지만 늦은 더위와 예상보다 많았던 강우로 다소 개화가 늦은 편이다.


오서산은 산행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험한 곳. 비탈진 경사가 많고 등산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곳도 더러 있다. 때문에 등산화와 산악 지팡이 등 산행도구를 챙기는 것이 나을 듯하다. 만약 정상을 오르기 힘들다면 오서산 중턱에 위치한 정암사까지만이라도 가보자.

정암사는 고려시대 대운대사가 창건한 전통 불교사찰. 산에 발을 들여놓고 30여분 오르면 정암사 약수터가 지나가는 이를 붙잡고 있다. 물 한모금을 마시며 주변 언덕에 잠시나마 걸터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산사를 감상하면 시간을 묻어둔 깊은 불자의 숨결이 마음속 깊이 와닿는다. 다른 사찰과 비교해 작고 낡은 고찰에 속하지만 나름대로 세속과 적당히 거리를 둔 옛 지혜가 돋보인다. 사찰앞에는 수백년생 느티나무가 그 멀고도 오래된 기억을 잊지 않은채 내왕객을 맞는다.

든든한 산세에 기운을 차렸다면 은은한 서해 낙조를 보러가는 것은 어떨까.

홍성군 서부 남당리 일원에 자리잡은 남당항은 분위기 있는 노을과 한껏 서해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홍성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홍성군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당항은 광활히 펼쳐진 천수만과 어우러진 홍성의 제2종 어항. 항구 주변 횟집에서는 커다란 접시위에 담긴 대하, 우럭, 새조개, 꽃게, 새우, 장어 등 각종 해산물들이 풍성한 인심에 팔리고 있다. 홍성이 안고 있는 유일의 바닷가 관광명소로 매년 1∼2월에는 새조개 축제가, 9∼10월에는 대하축제가 열려 독특한 서해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또 남당항 인근에 위치한 궁리방조제에서 가족과 함께 철새를 구경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시간이 난다면 남당항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죽도로 향해보자. 서부면 서쪽 끝에 위치한 죽도(竹島)는 이름처럼 대나무로 둘러 쌓인 섬. 대나무들이 섬주변에 빼곡히 심겨져 있어 배를 타고 다가서면 기이한 섬 풍경에 잠시 시름을 접는다.
또 바다낚시가 유명해 섬주위는 온통 뭍에서 흘러든 낚시꾼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다.

홍성은 예로부터 산과 바다,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철새를 놓고 고장의 자연문화를 자랑한다.
잠시 소외됐던 서부권의 자연 유산이 지금은 소중해진 녹음과 어우러져 신비스럽고 친숙한 체험으로 연일 다가서고 있는 것. 억새 사이로 불어오는 가는 실바람에, 고찰이 풍겨준 엄숙한 내세기원에, 서해를 끌어 당기는 그윽한 파도 내음에 지친 심신은 어느덧 자연의 일부분으로 동화되고 만다.

/ sunysb@fnnews.com 장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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