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정해종의 아프리카 미술 산책]검은대륙의 아름다움 틀에박힌 눈으론 볼수 없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1.03 14:05

수정 2014.11.07 00:51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동안 미지의 대륙으로만 알려져 왔던 아프리카가 ‘쇼나 조각’으로 일약 세계 미술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아프리카 미술의 어떤 점이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국내에 아프리카미술을 처음 소개해온 터치아프리카 정해종 대표가 이에 대한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정해종의 아프리카 미술산책’을 주간 연재한다.<편집자주>

프롤로그-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아프리카 전통 미술품들을 대하는 첫 느낌은 당혹감일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미술이라고 여겨왔던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 무엇들이 시선을 압도해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미술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거나,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라면 당혹스럽다기보다는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신비스러운 경험도 우리에게 익숙한 아름다움과 근본적으로 다른 그 무엇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전통미술은 한 민족이 오랜 시절 누려온 문화의 반영이므로 그 문화를 이해하기 전까지 ‘그 무엇’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가면이 하나 놓여 있다 치자. 대게의 사람들은 그 가면을 보고 “내가 이것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심리적 강박을 느낄 것이다. 이 의문의 답에 접근하기 위한 가장 신속하고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의 눈과 마음을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먼저 당신의 눈을 믿어라, 그리고 주의 깊게 살펴라. 나무의 부드러운 선과 머리 장식의 거친 질감, 가면의 전체적인 형태에 주목하라. 이렇게 눈으로 가면을 살폈다면 그 다음에는 당신의 마음을 이용하라. 이 가면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당신이 그것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유심히 살피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예술품을 탐색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아프리카 미술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쓰임새와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물건들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무엇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미술에 대한 복잡한 개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어떠한 고정관념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자유롭고 순수한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벌거벗은 눈과 비워진 마음으로 아프리카 미술품의 자연스러운 형태와 순수함의 진가를 알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다음의 질문들의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이 예술품들이 어떻게 사용되어졌을까?”, “왜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만들었나?”, “이 예술품들은 전통적인 것일까, 현대적인 것일까?”, “나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나?”

아프리카 예술을 살펴보기 전에 아프리카 자체에 대해 몇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거대하다.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 굳이 비교하자면 알래스카를 포함한 미국대륙의 3배 크기다. 그 안에서 2000여 부족들이 700개 이상의 언어로 소통해왔으며, 현재에는 53개국으로 분할되어 있는 복잡한 사정들을 숨기고 있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 대륙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기후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하라 사막을 경계로 해서 지리, 문화, 인종, 종교적으로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사하라 사막의 이남, 그러니까 흔히 우리가 블랙 아프리카라고 부르는 곳에서만도 사막에서 우림에 이르기까지, 험준한 산악지대에서부터 드넓은 사바나 평원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자연환경과 문화적 배경은 다양한 예술품을 낳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사하라 사막은 대륙의 서쪽 끝에서부터 소말리아에 이르기까지 바다처럼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 모래의 땅이다. 모로코,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를 포함하고 있는 북아프리카는 아프리카라기 보다 이슬람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슬람은 자체적으로 풍부한 예술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이는 사하라 이남 블랙 아프리카의 것과는 매우 다르며 아프리카보다는 오히려 지중해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문화와 역사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최초의 문화는 북부 나이지리아에서 태동한 노크(Nok) 문화다. 니제르 강과 베누에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출토된 테라코타 토기와 소상(小像)들은 이 지역에서 싹텄던 최초 부족사회의 유물들이며 블랙 아프리카 문화의 원형으로 시기는 BC 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후 차드 호반(湖畔)의 샤오(Sao) 문화와 나이지리아 이페(Ife)와 베냉(Benin)의 청동주조는 이후 찬란하게 펼쳐질 아프리카 조형미술의 부흥을 예고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블랙 아프리카 미술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페와 베냉의 청동조각은 아프리카의 일반적 조형양식과는 다르게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이후 이러한 사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주의 양식은 아프리카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조형과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료에 있어서는 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아프리카의 전통미술의 대표적인 모델들은 중부와 서부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으며, 동부 아프리카의 미술은 중서부의 미술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두 지역 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온다. 중서부 아프리카가 일찌감치 농경을 시작한 반면 동부 아프리카는 전통적으로 유목에 의존해 생활을 해왔다. 동부 아프리카에서는 나무 조각들이 흔하게 발견되지 않는데,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나무 조각과 같은 조형물들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목이라는 생활방식의 특성상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으며 머물던 곳이 정들만하면 또 소떼를 몰고 어디론가 이동을 해야만 했다. 수렵을 하는 부족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동을 하는 부족들의 세간은 최대한 단출해야 한다. 그들에겐 굳이 조각상까지 만들어 짐을 늘일 이유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일부 동아프리카인들이 농장을 만들어 정착하는 일도 있긴 했지만 끝내 그 땅을 지키는 일은 매우 드믄 일이었다. 좀더 나은 토양과 더 많은 곡식이 생산되는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아프리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어져 왔다. 그 재료를 얻을 수 있는 울창한 산림이 대부분 아프리카 서쪽과 중앙에 위치한다는 것,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인구가 불어나고 왕권이 강화되며 많은 왕국들이 출현했다는 것 또한 미술문화의 부흥과 관련이 있다. 동부 아프리카의 공간적 배경은 대부분이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이며, 조각에 쓸만한 아름드리 통나무들이 흔치않다. 남부 아프리카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남부 아프리카는 거친 토양의 준 사막지대가 넓게 분포한다. 오늘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아름답고 정교한 많은 미술품들이 대부분 중서부 아프리카의 산물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사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동부 아프리카에서도 기원전부터 악숨(Aksum) 제국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인도양에서의 무역을 통해 이슬람 문화와의 접촉이 빈번했고 에티오피아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리스도교 문화가 번성하고 있었다. 비록 중서부 아프리카처럼 풍부하지는 않지만 이 지역에서도 뛰어난 미술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십자가(Ethiopian Cross) 문양 세공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런가하면 탄자니아의 마콘데(Makonde) 족의 목 조각은 후에 피카소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훌륭한 것들이었다.

한편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타 지역과 다르게 평면미술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칼라하리 사막 주변의 동굴과 넓은 암벽에 남겨온 그림들이 그것들이다. 그 그림들을 남겨온 부족들이 흔히 부시먼(Bushmen)이라 불리는 산(San)족이다.
연조로만 말한다면 이 부시먼들이야말로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래전부터 사하라 이남 곳곳의 바위에 작품을 남겨온 아티스트들이다. 그 그림들은 문자가 없었던 부시먼들에겐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편이었고, 가장 중대한 공공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이 글은 www.baobabians.net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정해종 시인·터치 아프리카 대표

■사진설명=아프리카의 한 부족이 기이한 가면을 뒤집어 쓴 무용수를 둘러싸고 북과 나팔 등 각종 악기를 연주하며 토템 의식을 행하고 있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