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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죠르쥬 바따이유의 에로티즘]사랑과 죽음을 하나의 개념…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08 14:20

수정 2014.11.07 00:08



프로이트는 사랑의 충동인 에로스(사랑의 신)와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죽음의 신)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설명하면서 조셉 캠벨은 유아가 어머니에게서 에로스의 충동을 느끼고 아버지에게서 타나토스의 충동을 경험한다고 이야기한다. 에로스적인 충동과 타나토스적 충동, 사랑과 죽음의 감정의 혼재가 서구에서의 사랑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자면 싸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싸드는 에로티즘과 죽음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죽음과 친숙해지기 위해서 죽음을 방탕의 개념에 결부시키는 방법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이러한 싸드의 견해에서 출발한 프랑스의 철학자 죠르쥬 바따이유(1897∼1962)는 ‘에로티즘’(1957)에서 인간의 사랑 행위와 에로티즘을 죽음이라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바따이유에게 있어서 인간의 실존적 상황은 죽음이라는 단절적인 심연에 의해서 불연속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한계는 보편적 실재와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연속성에 대해 끊임없이 갈구하게 하며, 존재의 연속성과 죽음과 같이 인간본질을 규정지우는 현혹적인 요소를 에로티즘에서 동일하게 바라보고 있다.
바따이유는 에로티즘이 단순한 성의 문제를 넘어 신성에 이르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향수는 인간에게는 생식과 죽음에 전제하는 3가지의 에로티즘, 즉 육체의 에로티즘, 심정의 에로티즘, 신성의 에로티즘을 낳고 있다.

바따이유에게 에로티즘의 출발점은 인간실존의 비연속성에 근거한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적 상황이며, 에로티즘의 인류사적 기능은 실존적 한계와 단절을 조장하는 터부와 금기에 대한 뛰어넘기와 위반을 통한 소통적 연속성의 획득에 놓여있다. 에로티즘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폭력과 위반의 영역이며, 불연속적 존재인 인간이 그 존재를 탈취당할 때 그것이 엄청난 폭력을 야기하는 것은 자명하며 가장 폭력적인 것은 죽음이다. 불연속적인 인간이 불연속적 존재로서 남기를 간절히 바라더라도 죽음은 여지없이 짓밟아 버릴 수 있다.

불연속성의 한계를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게 해주는 연속성을 얻고자 하는 것은 인류사에 있어서 모든 연인들의 숙제였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불연속적 존재를 연속적 존재에 이르게 해준다.
따라서 에로행위와 비견되는 종교적 희생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제물의 죽음이 야기시키는 신성(神聖)의 본질은 엄숙한 종교적 의식이 집전되는 동안, 불연속적 존재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계시되는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갈망이다. 신성의 에로티즘은 궁극적으로 불연속적인 개체가 개별자로서 머물고자 하는 욕구를 부정하게 해준다.
바따이유에 따르면 정상적인 일상성을 떠나서 에로티즘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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