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화의 키워드는 문화다. 정치나 경제가 아니다. 유럽과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나라인 영국에서 토니 블레어 정권이 들어설 당시 젊고 혁신적인 국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이른바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 해리 포터의 나라, 팝과 펑크의 나라 영국의 문화를 상품으로 바꾸는 전략에서 패션산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리, 밀라노, 뉴욕과 함께 런던은 세계 패션의 중심이다. 영국에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가 많지만 그중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06년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입혀지고 있는 해골문양도 그녀로부터 영감을 받은 펑크의 한 부분. 캐릭터화돼 현대문명에 대하 저항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웨스트우드는 1941년 영국에서 출생, 1973년 킹스로드에 부티크를 오픈한 뒤 70년대 중반 파트너 말콤 막 라렌과 함께 ‘펑크룩’을 만들어냈다. 웨스트우드가 디자이너로 출발한 무렵 런던에 펑크가 출현하면서 웨스트우드도 반항이란 단어를 의복에 사용했고 계급의 차별이 없는 패션을 제시했다.
웨스트우드는 펑크를 표현하며 찢어진 티셔츠에 문명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문구를 써넣거나 악마스런 모양을 프린트해 사용했다. 보디페인팅, 입고 싶은 대로 편하게 입어 불쾌감을 준 ‘거지’ 모습의 ‘그런지 룩’(Grunge look)도 발표했다.
웨스트우드는 빈번한 점포명의 교체와 함께 컬렉션의 주제들에 다양한 메시지를 담았다. 1981년에는 해적 패션을, 그후에는 그런지 룩의 원조로 꼽는 ‘아메리칸 파이어니어’를 주제로 도시 반항아들의 태도를 투영시킨 무정부주의 스타일을 표현했다. 이 컬렉션에서는 정치화된 세상과 표준화된 의상의 반항을 보여줬다.
1986년에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래를 창조해내는 방법’이라는 패션 철학으로 18세기 이전의 살롱 문화와 19세기의 가구, 그림, 장식품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버슬스커트와 러플, 트레인 등을 부활시켰다. 1987년 ‘해리스 트위드’ 컬렉션에서 영국적 패션이미지가 등장했고 90년대 중반까지 컬렉션에 도입됐다.
웨스트우드는 런던 펑크로부터 출발, 하이패션 디자이너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오늘날 런던 패션을 세계적인 위치에 올려놓았다. 미국 언론에 의해서도 세계 패션계의 최우수 크리에이터 6명중 유일한 여성으로 선정됐고 웨스트우드는 패션에 관한 한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그녀는 영국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패션이미지와 복식들을 작품세계에 도입함으로써 세계 패션에 대해서 자신의 패션이 영국산의 문화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녀의 영국문화에 대한 공이 인정돼 1992년에는 영국 여왕의 훈장을 받았을 받았고, 2006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남작(Dame)’ 작위도 받았다.
패션디자이너들에 대한 영국에서의 지위와 유럽국가의 뿌리 깊은 장인정신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어떤 분야에서든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5000년 역사의 우리나라도 의류패션산업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도약하려면 산업의 일부가 아니라 문화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속에서 우리 패션도 세계적인 꽃을 피우기 바란다.
/이윤정 경인교육대 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