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지형의 변화를 몰고 올 정계개편의 물꼬를 예상을 깨고 여당이 아닌 고건 전 총리가 텄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고건 전 총리가 ‘희망한국국민연대’라는 이름으로 중도실용주의 세력을 7월 중 규합하겠다고 2일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 계획까진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도개혁세력의 결합은 결국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서 나온 일부 세력들의 신당 창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고건 발 정계개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떠오른 동시에 내년 대통령 선거를 향한 ‘고건호’가 닻줄을 올린 것이다.
그가 지방선거 후 머지않아 칼을 빼들 것으로 선거 전부터 예견됐지만 그 시점은 예상보다 빠르다는 게 중론이다.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위한 정계개편 추진 계획을 예고했던 우리당이 역대 정권 사상 최악의 선거 패배로 최대 정치 위기에 몰린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고 전 총리의 대변인격인 김덕봉 전 총리실 공보수석은 “(여당의 참패로 끝난)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 때문에 연대모임 결성을 서두르게 됐다”고 전했다. 우리당과 민주당과는 거리를 둔 채 정치권 외곽에서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고 전 총리측의 속내가 감지된다.
한편 고 전 총리는 “민주화운동 시대 때는 민주와 반민주 구도로 가서 목소리만 높이면 됐지만 이제는 그것이 안 통하는 시대”라고 말해 그가 추진할 정치권 새판짜기는 ‘수구세력(한나라당) 대 민주개혁세력’ 구도로 몰고 가려는 우리당의 생각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나라당 안에도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깨끗하고 개혁적인 분이 많기 때문에 그런 분들과 같이할 수 있다”고도 밝혀 민주당과 우리당의 우호세력은 물론 소장파를 비롯한 한나라당의 일부 세력과도 손잡을 수 있음을 예고했다.
그러나 정치권 한편에서는 고 전 총리가 향후 대권가도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고 전 총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안영근 의원은 “중도실용주의라는 이념에는 동의하지만 (우리당 의원들이) 탈당하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재야 출신의 한 의원도 “고 전 총리는 시대정신이 없기 때문에 예전 정몽준 의원의 세력만큼 큰 파괴력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rock@fnnews.com 최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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