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에피소드 사진기처럼 ‘찰칵’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가까이 있는 것이 도리어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흔히 귀한 것일수록 먼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까운 곳은 제쳐두고 멀리서 찾는다. 결코 나무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가까이에 있는 보석은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옛 화가들도 ‘등잔 밑’의 세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기서 ‘등잔 밑’의 세상이란 생활세계를 말한다. 그림의 소재가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도 생활세계는 안중에도 없다. 대부분이 이미 검증된, 고고한 소재만 찾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기암괴석의 산수, 화조, 도석인물 등 관습적인 소재와 스타일만 고집했다. 자연히 그림이 관념적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하지만 일부는 가까운 ‘등잔 밑’으로 눈길을 돌렸다. 다른 화가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생활세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경산수의 개척자인 겸재 정선, 풍속화로 일가를 이룬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같은 화가들은 우리의 정서가 담긴 산수와 풍속을 빼어난 솜씨로 그렸다. 그것은 중국풍의 관념적인 세계가 아니라 이 땅의 숨결이 느껴지는 신토불이 그림이었다. 긍재(兢齋) 김득신(1754∼1822)도 생활 속의 소재를 바탕으로 뛰어난 풍속화를 남겼다.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파적도’
김득신은 그림을 그리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림을 그리다가 생을 마쳤다. 아버지도, 아들도, 심지어 사위까지도 도화서의 화원이었다.
그는 도석인물(道釋人物)을 비롯하여 산수·영모(翎毛) 등도 잘 그렸다. 하지만 장기는 풍속화였다. 풍속에 해학적인 분위기와 정서를 가미하여, 스승인 김홍도 못지않게 특출한 기량을 과시했다.
대표작인 ‘파적도(破寂圖)’는 고요를 깨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한가로운 봄날, 노부부가 마루에 앉아서 틀을 놓고 일을 하고 있다. 마당에는 암탉이 병아리와 함께 모이를 쪼고 있다. 평화로운 정경이다.
그때 갑자기 사건이 발생한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잽싸게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것이다. 화들짝 놀란 영감님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다. 손에는 담뱃대가 들려 있다. 머리에 쓴 망건이 날아간다. 돗자리를 짜던 틀이 마당으로 넘어진다. 마루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다. 아낙도 놀라서 일어섰다.
마당에서는 겁에 질린 병아리들이 달아나기에 바쁘다. 암탉도 표독스레 제세로 �v아간다. 하지만 고양이는 잡힐 것 같지가 않다.
일상에서 포착한 급박한 상황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순전히 화가의 머릿속에서 창작된 것 같지는 않다. 생활 속에서 이런 광경을 직접 접한 뒤, 그것을 충분히 발효시켜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의 실감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더욱이 아낙의 포즈를 보자. 아낙의 관심사는 고양이와 병아리가 아니다. 오로지 마당으로 떨어지려는 영감님이 걱정이다. 그래서 남편이 다칠까봐 재빨리 붙잡으려고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숨어 있던 부부간의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애정이 생생하다.
또 영감님과 아낙의 포즈에서 한 집안의 가장과 내조자의 역할을 재확인할 수도 있다. 영감님은 몸을 날려서 재산인 병아리를 지키려고 위험도 감수한다. 반면에 아낙은 마당에 떨어지려는 영감님의 안녕을 바라며 붙잡으려고 한다. 집안에서 부부의 역할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그림이다.
▨해학성을 극대화하는 세심한 조형미
‘파적도’의 매력은 내용뿐만 아니라 조형적인 면에서 찾을 수 있다. 순간적인 장면의 해학성과 부부간의 애정을 극대화하는 조형전략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림의 초점은 고양이에 모아진다. 마루 위에서 고양이를 향해 몸을 날린 영감님과 그런 영감님을 붙잡으려는 아낙, 그리고 마당에서 달려드는 암탉의 방향이 병아리를 문 채 달아나는 고양이를 향해서 집중되고 있다. 이 절묘한 구도와 동세 속에 급박한 상황은 더욱 고조된다.
그런데 이때 주목할 것은 고양이의 대가리 방향이다. 고양이는 병아리를 물고서 화면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다. 즉 달려드는 남편과 닭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 그림의 재미는 배가 된다.
만약 고양이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뒷모습을 보여주며 달아나는 장면으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그림의 긴장감은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마치 약을 올리듯이 달려드는 사람과 닭 쪽을 쳐다본다. 즉 자신에게 집중되던 관람자의 시선을, 다시 오른쪽 사람과 닭 쪽으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개를 살짝 돌려놓음으로써, 내용이 아주 드라마틱해진다.
‘파적도’는 김득신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그림이다. 순간적인 상황을 긴장감 있게 구성한 조형미와 해학적이고 정감 넘치는 표현 속에서 풍속화가로서 그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다.
‘키워드’
생활은 감동의 원천이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생활의 저수지에 방류되어 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피라미처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과 그것을 엮어서 쓸모 있게 만드는 사람. 나는 어느 쪽인가.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그 아이디어에 몸을 만들어주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다. 행운은 항상 곁에 있다.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
1) 김득신, ‘파적도’, 종이에 담채, 22.4×27.0㎝, 18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2) 김득신, ‘밀희투전’, 종이에 담채, 22.4×27.0㎝,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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