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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뭉크 ‘절규’

박현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9.21 16:44

수정 2014.11.05 11:56



※거친 붓질과 색채 인상주의를 매질하다

‘예스맨’이냐? ‘노맨’이냐?

미술사에 굵은 자취를 남긴 화가들은 어느 쪽일까. 어느 광고카피가 답이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뛰어난’ 화가들이다. 화가는 기질적으로 기존의 미술양식에 순응하기보다 반발심이 강한 편이다. 차별화된 조형언어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까닭이다. 미술사는 ‘아니오’라며 반기를 든 화가들에 의해 표현 영역을 확장해왔다.

▨표현주의, 인간의 추한 면에 주목

1905년부터 1930년까지 독일 미술계를 지배한 표현주의는, 일반적으로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며 나타난 미술사조로 통한다. 인상주의가 사물의 거죽에 닿은 빛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는데 목숨을 걸었다면 표현주의는 반대다. 망막에 맺히는 순간적인 인상을 거부하고 내면으로 들어갔다.
왜곡된 형태와 색채로 인간의 내면세계에 주목한 것이다. 표현주의자들은, 화가라면 세상의 모습을 재현하기보다 개인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19세기 말의 반 고흐와 고갱, 뭉크, 놀데,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이 표현주의 가문을 빛낸 스타들이다.

그들의 그림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자연의 형태를 왜곡시킨 거친 그림들이, 전통적인 미술이 추구하던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름답고 밝은 스타일을 그림의 전형으로 여기던 이들에게, 표현주의는 시각적인 횡포에 가까웠다.

표현주의 화가들은 인간의 고통과 가난, 폭력, 격정에 대해 아주 예민하다. 그런 만큼 미술이 삶의 즐거운 면만을 포착하거나 이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은 위선적인 태도라 여겼다. 그래서 대부분의 화가들이 아름다운 광경에 주목할 때, 그들은 삭막한 현실을 직시하고 비루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표현하고자 한다.

▨뭉크, 살아 있는 인간을 그리다

노르웨이 태생으로 독일 표현주의에 깊은 영향을 끼친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 그는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스타화가’ 중의 한 명이다.

다섯 살 때 결핵으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 열네 살 때 집안 살림을 꾸리던 한 살 위인 누나의 죽음(역시 결핵)으로 그의 생에는 불행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다.

뭉크는 병약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미술대학에 들어간다. 졸업 후 파리에서 잠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지만 곧 반발한다. 왜냐하면 실내에서 책을 읽는 남자나 편물을 짜는 여자가 등장하는 그림은 더 이상 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세상과 호흡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내면에 주목한다. 사랑, 죽음, 고통, 불안 등의 감정을 거친 붓질로 그린다. 그것은 불우한 개인사에 바탕한, 뼈아픈 ‘영혼의 고백’이다.

▨‘절규’, 삐딱한 ‘사선’으로 외치다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1893, 유채)는 불길한 기운으로 충만해 있다. 핏빛으로 물든 하늘과 구름, 두 척의 배가 떠 있는 해안, 사선으로 배치된 다리, 그 위에서 온몸으로 절규하는 사람…. 눈 코 입 등 최소한의 형상으로 왜곡된 주인공의 얼굴은 성별 구분도 없다. 얼굴이 해골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하다.

화면은 대담하게 사선으로 구획되어 있다. 또 사선으로 배치된 ‘다리’의 직선과 그림 전체를 휘감은 곡선이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 모서리로 비스듬히 그려진 직선(다리)은, 수평과 수직의 선이 주는 안정감과 달리 절규하는 그림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게다가 이 사선은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는 시선 방향과 반대로 배치되어 있다. 즉 다리가 오른쪽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왼쪽에 배치됨으로써 관람자의 시선을 불편하게 한다.

뭉크의 그림이 불편한 것은 사선구도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난폭한 색채와 형상 탓이 크지만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사선 구도에서도 불편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유채물감으로 그린 ‘절규’를 석판화로 제작한 ‘절규’(1894), ‘절규’와 같은 배경이되, 군중을 등장시킨 ‘불안’(1894), 세 명의 소녀가 서 있는 ‘다리 위의 소녀들’(1900)과 ‘다리 위의 소녀들2’(1901) 등은 사선구도를 주목하게 만든다.

사실 사선구도는 그림에서 찾아보기 힘든 구도다. 그런데 뭉크는 화가들이 꺼리는 사선구도를 즐기고 있다.

▨뭉크, 색채와 형태를 매질하다

거친 붓질도 눈길을 끈다. 난폭할 정도로 마구 칠해져 있다. 당연하다. 그의 관심사는 소재의 세밀한 재현보다는 형태와 색채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주제의 최대치를 끌어내는데 있기 때문이다. 붓질은 자기 혼을 그림에 불어넣는 지난한 사투의 과정이다. 그리고 뭉크는 자신이 만족할 만한 지점에서 붓질은 멈췄다.

표현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자연의 모방이 아니다. 색채와 선으로, 화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최대한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절규’는 형태의 과감한 생략과 변형, 사선 구도의 효과적인 사용, 강렬한 색채대비 등으로 인간의 불안 심리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키포인트’

흐르는 물을 따라가면 무리가 없다.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을 따라서 하면 편하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을 계획한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 남이 하지 않은 일에 주목해야 한다.
본래 길은 없었다. 과감하게 첫걸음을 내딛은 사람에 의해 길이 생겼고, 왕래가 잦아서 드넓은 길이 되었을 뿐이다.
특화만이 살 길이다.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

1) 뭉크, ‘절규’, 캔버스에 유채, 91×73.5㎝, 1893,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2) 뭉크, ‘불안’, 캔버스에 유채, 93×72㎝, 1894, 오슬로 뭉크미술관 소장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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