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석칼럼] 박용성 회장의 귀거래사/방원석 논설실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1.07 17:03

수정 2014.11.04 19:42



지난해 두산그룹의 비자금파문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박용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의 최근 동정이 눈길을 끌었다.세계유도연맹회장 자격으로 지난주 쿠바에서 열리는 국제스포츠총회에 참석했다는 소식이다.그의 이런 근황에서 재벌총수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그 심경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박회장은 대한상의회장으로 재계의 얼굴이 되기앞서 체육계의 얼굴마담으로 통했다.1982년 대한유도회부회장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뒤 유도외길인생을 걸었고,그 공로가 인정돼 IOC위원까지 오른 그의 인생역정으로 볼때 재벌총수라기보다는 체육계인사라는 호칭이 더 살갑다.


IOC위원에서 제명될 위기

솔직담백한 성향,서민스타일도 천상 체육인이다.대한상의회장을 지낼때정부나 정치권에 대해 직설적으로 쏟아낸 ‘쓴소리’도 어찌보면 체육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체득한 스포츠기질의 질박함과도 무관치않다.

서울올림픽당시 재벌총수들이 각종 경기단체장을 독식하던때가 있었다.대통령이 가끔 선수들과 경기단체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했고,재벌총수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기단체장을 떠맡았다.명예는 몰라도 깨진독에 물붓듯 돈만 들어가는 실속없는 자리였다.서울올림픽이후 엘리트스포츠가 ‘권력’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재벌총수들이 경기단체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이런 여파로 여태껏 체육계와 인연을 이어가는 재계인사들은 소수에 그치고 있다.이건희 삼성회장(레슬링),정몽구현대·기아차회장(양궁),박용성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유도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회장에게 체육계는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헌데 비자금파문은 체육계로 ‘귀향’하려는 그에게 뜻밖의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얼마전 비자금의 유죄판결로 IOC위원으로서자격이 정지된 그가 급기야 IOC위원에서 축출될 위기에 놓인것이다.IOC위원이 유죄를 받으면 제명당하는 IOC의 관례에 비춰 볼때 박회장의 축출은 이제 시간문제다.

하지만 최근 IOC가 희망적인 메세지를 던졌다.IOC가 그의 자격유지에 관한 최종 결정을 6개월간 보류한것이다.이는 우리정부가 박회장을 사면해주면 자격을 회복시켜주겠다는 뜻이다.IOC가 공을 우리정부에게 넘긴셈인데 이것도 IOC관례로 볼때 파격적이다.

이제는 나라가 보답할 차례

가뜩이나 요즘 국내체육계의 사정은 절박하다.내년7월 과테말라 IOC총회에서 결정되는 동계올림픽(2014년)의 유치문제가 발등의 불이다.올림픽유치는 IOC위원들의 비밀투표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IOC위원의 로비는 절대적이다.어느때보다 박회장의 손길이 절실한것이다.김운용 IOC전위원에 이어 박용성회장마저 IOC위원에서 퇴출된다면 나라체면이 말이 아니고,유치전에서 열세에 놓일것은 자명하다.강원도와 체육계의 오랜 숙원인 동계올림픽 유치가 물건너갈 공산마저 크다.

무보수 명예직이 말하듯 IOC위원은 자기 돈을 써가며 국익을 챙기는 자리다.박회장이 쿠바에서 열린 국제스포츠총회에 참석한것은 재벌총수로서권력과 명예를 훌훌 털어버리고 체육계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려는 박회장의 ‘귀거래사’(歸去來辭)다.박회장은 평생 사재를 털어 체육발전에 헌신해왔다.
죄는 밉더라도 그의 공은 인정해야 한다.이제는 나라가 그에게 보답할 차례다.
마지막으로 봉사할 기회를 줘야한다.

/wsba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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