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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무시무시한 핵폭탄에서 암치료·우주여행까지

김승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1.26 21:05

수정 2014.11.04 15:58



마리 퀴리는 차가운 창고 실험실에서 젖먹이 아기를 유모에게 맡겨 놓고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인 ‘라듐’을 찾아냈다. 방사능이라 이름 붙은 이 물질은 1945년 8월6일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로 변신해 막대한 인류의 재앙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 후 이 물질은 평화이용을 위해 모든 동력을 집중시켰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인류역사에 있어 커다란 발견의 하나로 꼽히는 방사선과 다양한 응용기술을 알아본다.

■방사선, 마리 퀴리의 위대한 유산

방사선이란 단어는 오늘날 가장 큰 오해를 사고 있는 단어 중 하나다. 과학자들은 그것이 지구 나이보다 더 오래된 자연적인 현상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방사선이라는 것이 원자력 시대인 최근에 이르러서야 소개된 20세기의 새로운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원유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화석연료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지금 방사선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현재 핵폐기물 등 방사선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식품, 의료, 범죄예방, 환경보호, 농업, 발전, 우주탐사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상에서 방사선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회사원 김철중씨(41)는 기상을 알리는 알람시계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알람시계 문자판이 발광으로 되어 있어 어둠 속에서도 탁상시계나 손목시계를 볼 수 있다. 김씨는 이어 신문을 들고 화장실 변기에 앉는다. 그 후 샤워를 하고 콘택트렌즈를 끼고 아침을 먹은 후 아내가 건네준 옷을 입고 출근한다.

여기에도 방사선이 숨겨져 있다. 먼저 방사성 동위원소가 방출하는 감마선이 쓰레기유출 없이 하수를 처리하고 하룻밤 동안 콘택트렌즈를 보관하는 생리 식염수는 방사선이 조사되었기 때문에 민감한 눈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미생물을 죽인다.

그는 또 옷을 입을 때 방사선 변이품종 개량과정에서 개발된 개량변종 때문에 속옷의 면이 더욱 생산적인 방식으로 재배되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음식물을 시원하고 신선하게 보관하는 냉장고를 가동시키는 전기에 감사한다. 아침에 달걀 프라이를 하려고 할 때 달걀껍질이 깨어지지 않은 채 상자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 껍질이 얇아서 깨지기 쉬운 달걀은 식료품점으로 가기 전에 방사선 두께 측정기에 의해 분리되었다.

김씨는 차를 타고 사무실로 가면서도 방사선과 함께한다. 엔진의 마모, 윤활유의 양 등을 측정하는 데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또 차에 사용된 모든 금속물질도 초기공정과 최종 금속제련 공정 모두에서 방사선기술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다.

그는 최근 친구의 암치료를 지켜보면서 방사선은 원자에서 전자를 이탈시킬 만큼 에너지가 넘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방사선이 사람 세포 조직의 DNA 구조를 절단하거나 구조 변화를 일으켜 세포의 기능을 떨어지게 하거나 세포를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에서는 방사선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병을 치료한다. 암 환자의 경우 암세포 주위에 집중적으로 방사선을 쪼여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치료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자살유전자를 이용해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산업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

방사선과 원자력은 전기를 생산하는데 결정적으로 이용된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바로 그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원자로에서 핵분열로 인하여 발생한 열로 보일러의 물을 끓이고 그때 나온 더운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이 터빈 축에 연결된 발전기를 돌려 전기가 생산된다.

특히 방사선은 현대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방사선은 정유회사나 의약품 공장과 같은 수많은 공장에서 원료의 배합량, 유량측정, 누출감지 등을 통해 최적의 공정조건을 결정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제철소에서는 방사선을 이용하여 압연금속의 두께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제지공장에서는 초당 300m의 속도로 움직이는 종이의 두께를 정확하게 측정하여 공정을 관리하는데 방사선이 이용된다.

현대생활에 필수재료인 수많은 고분자(폴리에틸렌, 폴리스티렌, PVC, 폴리에스테르 등)들도 방사선 가교라는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들 제품은 관개 파이프, 절연재 및 카펫, 직물, 실내 장식물 등 생필품 원료로 사용된다.

자동차나 TV에 사용되는 수많은 전선들도 방사선 조사 과정을 통해 불에 타는 특성을 갖게 된다. 방사선을 투과시켜 이미지를 봄으로써 교량, 선박, 자동차, 엔진 등의 용접부위나 미세한 결함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항공기나 원자로의 안전성을 믿고 안심할 수 있는 것도 방사선을 이용한 비파괴검사기술의 덕분이다. 천연 보석에 전자빔이나 감마선을 조사하여 아름다운 색을 띠게 함으로써 보석 가치를 높이는 데도 방사선이 이용되고 있다.

방사선이 없다면 수많은 공장들이 멈춰서거나 수십 년 전의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누리고 있지만 방사선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품질과 가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방사선 없으면 교통수단도 올 스톱

항공기의 중요한 용접부는 방사선 사진으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며 항공기를 제작할 때도 실질적으로 많은 양의 압연 금속과 유리들을 사용하는데 방사능 측정기들은 이런 재료의 제작에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방사능의 또 하나의 고유한 응용분야는 공항의 이착륙 유도등에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데 있다. 공항에서 정전의 가능성에 대비하여 방사선의 발광성을 일으키는 트리튬을 사용한다. 이것은 날씨나 그 밖의 혼란스런 요인들에 관계없이 24시간 내내 믿음직하다. 확실히 방사선은 현대 항공 여행의 안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매년 많은 수의 심각한 열차 사고가 일어나는데 철도산업에 있어서도 레일 파단을 사전에 탐지하기 위하여 방사선을 응용하여 레일 자체의 응력을 측정한다.

잠수함을 이끄는 것도 원자로다. 이는 가솔린이나 디젤 엔진이 연소할 때 필요한 산소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핵잠수함을 아주 오랜 시간 수중에 머물게 할 수 있다.

방사선이 없으면 우주탐사도 이야기할 수 없다. 흔히 인공위성 하면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태양전지판을 상상하지만 지구를 벗어나 화성이나 목성에 도달하면 태양에너지 밀도가 너무 낮아서 태양전지판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몇 년씩이나 걸리는 우주비행에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싣고 갈 수도 없다. 우주를 비행하고 있는 수많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에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서 만든 전원이나 열원이 사용되고 있다. 이 에너지원은 그 수명이 수십 년이기 때문에 먼 거리를 비행하는 우주선의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수많은 어린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우주탐험의 꿈도 방사선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편 환경보호에도 방사선을 빼놓을 수 없다. 화력발전소의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황이나 이산화질소와 같은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 전자빔이란 방사선을 이용한다.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강이나 지하수의 이동을 탐지하는데 방사성 동위원소가 필요하며 염색 폐수나 축산 폐수를 방사선으로 정화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도움말=한국원자력연구소 김재희(책임연구원), 이병철(책임연구원), 박상현(선임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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