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이중섭 ‘가족에 …’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1.25 17:15

수정 2014.11.13 17:35



※담뱃갑에…널빤지에… 미치도록 그리고 싶었다

미국 문화원 직원이었던 조셉 맥다카트는 1955년 이중섭과 운명적인 인연을 갖는다. 그해 1월, 이중섭이 서울에서 개최한 개인전에 관한 신문평을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5월에는 대구 미국 문화원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들’ 외 2점을 구입하여,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에 기증을 하게 된다. 이듬해인, 1956년 4월 2일 모던 아트 뮤지엄 이사회는 맥다카트의 기증작품을 소장품으로 최종 결정한다.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린 3점의 그림은 ‘은지화(銀紙畵)’였다.
하지만 이중섭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그해 9월 6일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두운 격동기를 밝힌 예술혼

이중섭(1916∼1956)은 격동기를 살다간 불우한 화가였다. 6·25동란과 피란, 가족과의 이별, 빈곤 등 급변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자전적인 그림을 남겼다. 현재 남아 있는 이중섭의 그림은, 그가 월남한 후인 1951년부터 죽기까지 불과 5년 정도의 기간에 그려진 것들이다. 이 시기의 강렬한 작품과 기구한 인생역정은 그를 가장 대중적이면서 한국적인 화가로 만들었다.

1952년 말경, 전쟁으로 고생하던 일본인 아내(한국명 이남덕)는 자식들을 데리고 일본 친정으로 피신하고, 이중섭만 홀로 남는다. 시일이 지날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졌다. 더불어 엽서그림도 쌓여갔다. 그 엽서에는 절절한 사연과 함께 가족 그림이 등장한다. 자신과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이 어우러져 있거나 아이들과 아내, 또 아이들만 등장하는 행복한 모습이다. 그 그림들은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의 표현이었다. 그는 ‘항일성 식물’처럼 오로지 가족이라는 태양을 향해 움직였다.

당시에는 미술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중섭은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했다. 유화 그림을 캔버스가 아닌 나무판이나 종이, 은박지, 장지 등에 그렸다. 그리는 재료도 유채물감과 수채물감, 잉크, 연필, 색연필, 구아슈, 에나멜 등 다양했다.

■가난한 화가의 천국, 담뱃갑 은박지

그중에서도 이중섭을 상징하는 은박지 그림은 특이했다.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의 소장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진 은지화는 순전히 이중섭의 고안품이었다. 재료가 귀했던 시절,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 수 있는 시인들을 부러워했던 그였다. 우연히 발견한 담뱃갑의 은박지는 그림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피난지였던 부산의 다방이나 술집에서 은지화가 많이 태어났다. 장차 완성할 대작을 위한 밑그림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았다.

은지화의 제작과정은 간단하다. 먼저 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지를 벗겨낸 뒤, 지긋이 누르듯이 원하는 형상을 새긴다. 그 위에 물감을 바르고 닦아낸다. 그러면 오목하게 패인 선들에 물감이 남아서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을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맥타가트는 이런 은지화에서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불상의 저부조를 떠올린다. 남산의 가파른 암석 표면에 선으로 새긴 2차원의 평면적인 불상들 말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상감이나 저부조 기법 같은 전통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는 아내와 아이들을 그린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바닷가에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두 명의 아이를 그린 ‘바닷가의 아이들’, 잡은 게를 운반하는 아이와 게가 어우러진 ‘게와 물고기가 잇는 가족’ 등의 은지화는 그렇게 생명을 얻었다.

은지화의 수난사도 흥미롭다. 1955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작품이 철거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천진무구한 동심이야말로 이중섭 예술의 본질(친구인 화가 한묵)일 만큼, 남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완전 나체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방식이었다. 전시회는 호평이었지만 당국에서는 이들을 춘화로 여겼다. 그래서 풍기문란 혐의로 50여 점의 은지화를 철거했다.

■은박지에 상감한 사무치는 그리움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그림의 내용이 제목대로다(그림 제목은 후대에 편의상 붙인 것들이다). 왼쪽 아래에 팔레트와 붓을 쥔 화가(이중섭)가 있고, 바로 위에 아내가 화가를 보며 웃고 있다. 그리고 두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캔버스에는 물고기를 잡으며 노는 아이들을 그리는 중이다.

이중섭은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데 특출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자신이나 아내 모습은, 그림만 보면 그들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이 그림과 함께 보면 좋은 ‘엽서그림’으로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이 있다. 종이에 잉크와 색연필로 그린 이 그림은 이중섭이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자기 가족을 그리는 중이다. 그리움에 젖은 생활의 단면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궁핍한 시절의 산물인 은지화는 이중섭의 문신이다. 가족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그는 문신하듯이 은박지에 새겼다. 그 애틋한 문신으로 우리의 미술사는 은박지처럼 빛난다.

■키포인트=뜨거운 의지는 얼음 위에도 집을 짓는다.
여건이 문제가 아니다. 의지의 있고 없음이 문제다.
시인 김남주는 감옥 속에서도 우유곽에 시를 새겼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이중섭,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은박지에 유채, 10×15㎝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