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보르도 메독 지방의 포이약 마을에 위치한 포도원이다. 경작지 면적은 100㏊며 연간 210t의 포도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르도의 유구한 와인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하면서 일찍부터 대단한 평판을 얻었다. 로마의 시인 오손은 이미 325년에 이 샤토가 있는 포이약의 언덕과 그 땅의 훌륭함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포이약의 와인을 ‘포도주의 왕’이라 일컫기도 한다.
라피트는 조금 높은 곳(Hillock)이라는 의미의 Gascon의 언어인 ‘la hite’에서 유래한다. 17세기 세귀어 가문이 포도원을 운영하면서부터 라피트는 가장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포도원으로 명성을 얻는다.
18세기 초부터 라피트는 런던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당시 런던의 신문에는 “ 런던 시내의 공식적인 경매에서 라피트가 판매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런던의 신문들은 “프랑스의 새로운 최고급 와인”으로 라피트를 기사화했다.
1716년 세귀어 가문의 니콜라스 알렉산더 후작은 라피트의 와인 양조 기술을 향상시켰으며 베르사유 궁전과 외국 시장에서 좋은 와인의 명성을 높이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담 드 퐁파두르는 아주 작은 이브닝 파티에서도 라피트를 사용했으며 마담 뒤 바리는 오로지 왕의 와인만을 마시는 것을 의무라 여겼다.
18세기 라피트는 4명의 딸들에게 분할, 상속되며 세귀어 후작 큰딸의 아들 니콜라스 마리 알렉산더 드 세귀어 백작이 라피트의 상속자가 되었다. 1784년 라피트는 많은 부채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졌으며 1868년 8월8일 제임스 드 로칠드가 소유하기 전까지 많은 소유자가 바뀌었다.
라피트의 제품 중 최고의 빈티지는 1834년, 1841년, 1846년이다.
1855년에 이들 빈티지에 대해 가장 훌륭한 와인으로 평가됐으며 라피트는 최고의 등급에 올랐다.
이 랭킹은 새로운 것에 대한 표준과 메독 포도원에서는 놀랄만한 대사건이었다.
1868년 8월8일 제임스 드 로칠드 남작은 라피트를 구입한 지 3개월 후에 죽었고 포도원은 3명의 아들이 공동소유하게 됐다.
새로운 소유자들은 와인의 품질을 높이는데 주력했고 오늘날 900ℓ들이 통의 가격은 6만5250프랑의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이 가격은 20세기 말에 가격이 경신될 때까지 최고의 가격으로 기록되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포도원은 세계 1차 대전과 피록세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황폐화한 포도원을 로칠드 가문의 새로운 소유자 에일 남작이 건물을 복원하고 포도원을 복구했다. 그는 런던 와인 테스팅 행사의 집행 멤버였으며 보르도 와인 동업조합의 창립멤버였으며 메독 와인의 문예부흥 지도자였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1980년대 최고의 빈티지는 82년, 85년, 86년, 89년, 90년이었으며 1990년대 최고의 빈티지는 95년, 96년, 98년, 99년 그리고 2000년과 2005년의 빈티지는 금세기 최고의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와인나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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