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7년까지 장기 임대아파트 260만가구를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주거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빠졌다. ‘주거의 질’ 향상은 얼마나 실수요를 유발하고 주거욕구를 충족시키느냐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항이다.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임대=싼아파트’라는 인식을 바꾸지 못하면 1·31대책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부 계획대로 주택 물량 공세는 가능하더라도 살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주택관리, 기반시설 등이 확보되는 종합개발 방안이 절실한 실정이다. 정부가 임대주택 확대 공급도 중요하지만 ‘살만한 집’을 짓는 데도 중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반시설은 ‘삶의 질’의 기본
1·31대책은 주택이 ‘소유→거주’로 개념이 바뀔 것이라는 전제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전문가는 “방향은 옳게 잡았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주택이 거주 외에도 ‘재테크’ 수단으로 강하게 인식돼 왔기 때문에 임대주택이 수요자들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서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플러스 알파는 도로, 학교, 공원 등 기반시설과 병원, 쇼핑시설 등 생활편의 시설 확충을 말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임대주택의 양적 공급에만 급급하다 보니 국민임대단지가 베드타운에 머물고 있다”면서 “건설 단계부터 경기 분당이나 판교 등 신도시와 달리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남·광주 등지는 빈집으로 남아 있는 국민임대 단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입지 여건이나 기반시설이 수요자의 눈높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선계획 후개발’이라는 원칙이 적용됐지만 여전히 기반시설은 미비한 실정이다.
일반 분양 아파트와 같이 들어서는 임대아파트가 차별을 받는 것도 문제다. 임대아파트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구석진 곳에 자리잡기 일쑤다. 경기 화성 병점동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김모씨(42)는 “같은 단지에서도 임대아파트는 조망이 떨어지고 역에서 먼 곳에 배치된다”며 “이점이 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되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 서민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
고가의 임대료 역시 입주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임대료와 월세가 입주자들의 소득 수준보다 높다는 불만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임대료를 내고 나면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주택비가 도시근로자 소득의 2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정설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임대의 경우 연소득 대비 최고 30%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박사는 “월급 200만원 받는 사람이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고 부담할 수 있는 주택비는 최고 40만원”이라면서 “여기에는 월세뿐 아니라 관리비 등 주택관련 모든 비용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소득 수준에 따라 10개 계층으로 나눠 차별적인 주택정책을 쓰고 있다. 2분위 계층이 입주할 수 있는 국민임대 17평형의 경우 보증금 1000만∼2700만원, 월세는 15만∼30만원(관리비 포함)으로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2006년 기준 2분위는 연소득이 144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연소득 대비 주택비는 최고 25%에 달한다.
인천 송림 5년 공공임대 18평형은 보증금 3910만원에 월세는 45만원(관리비 포함)으로 3분위의 계층 연소득 1980만원의 27%에 달한다.
1·31대책에서 임대 주택 대상을 중산층으로 넓혀 5∼6분위 계층으로까지 넓혔다. 정부가 2017년까지 연 5만가구씩 내놓겠다는 비축용 임대가 그것이다. 정부는 비축용 임대 30평형을 기준으로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52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연소득은 2900만∼3300만원선인 이들 가구가 들어가 살기에는 값이 부담스럽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월세만 따져도 연 600만원이고 관리비 등을 포함하면 840만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연 소득의 30%에 육박하는 액수이다. 비축용은 세입자에게 우선 분양되지도 않아 얼마나 수요가 받쳐줄지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량확대·임대주택 품질제고 동시 추진해야
전문가들은 1·31대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물량 확대 뿐만 아니라 임대주택 품질제고도 함께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물량 확대만 신경쓰다 보면 고품격에 입맛이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아 결국에는 외면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임대주택 품질을 한층 더 격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평면개발과 설계 등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부가 너무 물량 확대에만 치중하다 보면 자칫 민간아파트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축용 임대는 새 택지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올부터 경기 김포 등 기존 택지지구에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다른 민간 물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엔알 박상언 사장은 “중산층을 위한 중형 임대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당담하고 정부는 서민 주거 복지에 더 치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임대주택에 대한 공급뿐 아니라 유지·관리 측면에도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박재언 과장은 “쾌적하고 편리한 주거 여건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와 기반시설 확충에 대한 방안이 나와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벤치마킹하려던 싱가포르가 서민 주거지역에 우선적으로 인프라를 깔고 꾸준히 관리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steel@fnnews.com 정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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