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가 활짝 열렸다.
재계 총수의 부인과 자녀는 물론 총수 타계 후 미망인이 왕성한 경영활동을 벌이면서 거센 ‘여풍(女風)’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그동안 내조에 전념하느라 그룹 경영과 거리를 뒀던 총수 부인들 중 계열사의 공식직함(임원 등)을 맡으며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의 잠재력’ 보여준다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여풍’은 남성 위주의 높은 담벼락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있다. 유교적 가풍으로 인해 그동안 가사에만 열중해 온 총수 부인 등은 최근 3D(Digital, Design, DNA) 시대를 앞두고 여성 특유의 순발력과 창의력, 민감성 등의 장점을 앞세워 대외 활동에 나서고 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그룹 중 19개 그룹의 총수 부인들이 전업주부였으나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부인들도 7명이나 되고 미술관을 운영하는 부인도 2명에 달하는 등 갈수록 대외활동에 나서는 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부 그룹은 총수 타계 후 미망인으로 경영전면에 나서거나 독자적으로 총수 자리에 오른 여성들도 있어 ‘여성 파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4대 그룹 중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부인 이정화씨는 현대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화 고문은 해비치리조트의 지분 16%를 갖고 있어 개인 최대주주로 리조트경영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이 고문은 줄곧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지난 2003년 해비치리조트 이사로 기업경영에 첫발을 내디뎠다. 공동대표를 맡아오다 지난해 11월에 고문으로 물러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는 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의 등기이사로 등재되면서 경영일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명희 이사는 급여를 받지 않는 비상근이사지만 대외 직함을 가지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회장이 25%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석기업은 비상장 부동산 임대·관리회사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씨는 계열사인 동양레저의 부회장과 동양매직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동양그룹의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의 맏딸인 이 부회장은 동생인 오리온그룹 이화경 사장과 달리 이제까지 대외활동은 거의 하지 않다가 대외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한 동양매직의 디자인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너가 있는 30대 그룹 중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과 신세계그룹의 이명희 회장 등은 그룹 경영의 지휘봉을 직접 잡고 있는 경우다. 현회장은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대북사업 등 각종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할인점 이마트의 성공신화를 이끌며 신세계를 국내 최고의 유통기업으로 키운 ‘여장부’로 통한다.
지난 2004년 타계한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부인인 양귀애 고문은 사주 역할을 맡고 있으나 그룹경영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전문경영인인 임종욱 사장으로부터 그룹의 굵직한 경영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 양 고문은 설원량문화재단과 인송문화재단의 대표를 맡아 문화계 지원과 장학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사회공헌활동도 남성 뛰어 넘는다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미술관 운영 등을 통해 사회활동에 나서는 여성은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건희 삼성 회장 부인)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최태원 SK 회장 부인) 등이다.
홍라희 리움 관장은 미대 출신(서울대 응용미술과)으로 지난해 한 월간지가 전국의 미술계 종사자와 관객 23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을 때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인물’ 1위에 뽑히기도 했다. 홍관장은 93년 삼성문화재단 이사, 95년 호암미술관 관장, 96년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일찌감치 대외활동에 전념해왔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2000년부터 관장을 맡고 있다. 재계 여성 20여명의 봉사활동 모임인 ‘미래회’의 회장직을 맡는 등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미래회에는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의 부인 안영주씨,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며느리 이수연씨 등도 참여하고 있다.
한편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부인 서창희씨도 그룹 내 봉사단체인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 총단장을 맡아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은 전국 시·도별로 지부가 결성돼 있으며 1주일에 한 번 장애인시설 등을 방문해 자원봉사활동을 펼친다.
/pch7850@fnnews.com 박찬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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