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삼키다’…조각가 천성명 개인전 21일부터
허무와 슬픔이 뚝뚝 떨어진다. 흠칫 무서워 발길을 멈추면서도 괴물 같은 사람에게 자꾸 관심이 쏠린다.
어디선가 죽도록 얻어터진 모습이다. 눈두덩이는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술도 한대 맞았는지 누에고치처럼 부풀었다. 가슴팍의 째진 상처에선 피도 흐른다. 그래도 그리 아프진 않은 모양이다. 원망 체념 등 많은 속내가 담긴 눈빛에 그저 미안해질 뿐이다.
엽기적인 조각가 천성명의 전시는 한편의 드라마로 연극적이다.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회색 톤의 피부와 옷을 입고 있는 그의 사람은 비현실적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자꾸만 마음이 끌린다.
이번에 천성명이 서울 사간동 선컨템포러리에서 21일부터 여는 개인전 ‘그림자를 삼키다’의 주제는 ‘상처’다.
폭력에 의해서든, 사람간의 시기심이나 경쟁심 그리고 말에 의한 것이든 상처는 상처받은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헤벌리고 앉아 있는 ‘회색 사람’을 통해 작가는 그 아픔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시장은 연극무대처럼 꾸민다. 1층 전시실 입구에는 손에 물고기 모양의 풍경(風磬)을 든 어린 소녀가 문 밖에 서 있다.
1층 전시실 다리 조각상 앞에서 이인동체의 샴 쌍둥이 중 하나가 다른 형제를 칼로 상처를 주고 협박하면서 고통을 준다. 다른 한 쪽 벽을 마주보고 새를 뒤집어 쓴 소년이 말 없이 서 있다. 이 소년은 공간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데 각 전시실 4곳에 한 명씩 벽을 마주하고 서 있게 된다.
2층으로 들어가면 소년 조각상의 등이 마치 거대한 흰 암벽처럼 보인다. 공간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한 이 소년은 목에 밧줄이 감겨 있다.
1층 입구의 풍경을 들고 서 있는 소녀보다 조금 큰 같은 인물이 등 뒤에서 풍경을 흔들며 노려보고 있다. 옆으로 돌아 정면으로 가면 물고기를 뒤집어 쓴 소년이 마주하고 앉아 있다. 역시 한 쪽의 벽을 마주보고 새를 뒤집어 쓴 소년이 서 있다.
3층엔 작은 소년(거대한 인물과 같은)이 밧줄을 힘껏 끌어 당기고 있다. 바로 2층 소년의 목에 감긴 밧줄이다.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죽이려 하는 모습이다. 지하 전시실로 들어서면 협박 당하던(협박하던) 샴 쌍둥이 형제와 물고기를 벗어 던진 소년, 끈을 잡아당기는 소년이 희미한 조명 아래 유령들처럼 우두커니 모여 있다.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듯 전개되는 전시장은 만화책을 보는 듯 몽환적이다. 슬픔과 우울함이 공존하는 작품들 속에서 무의식 속에 방치했던 기억들이 재생되고 숙연해진다. 예술은 힘이 세다. 전시는 3월10일까지. (02)720-5789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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