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5년 2월28일 화랑을 개관 첫 출발을 했다. 2001년 2월 27일 건물주에게 (전 화랑협회 종로지부장 유모씨) 구입한 천경자 2호 작품을 개관 첫날 판매했으나 며칠 후 위작이라 밝혀져 해약조치 됐다.
화랑을 오픈하자마자 첫 신고식을 위작과 함께 시작한 셈이다. 나는 또 10일후 건물주 유씨 “이번엔 감정서 까지 있는 진품이다”는 말만 믿고 천경자 3호 작품과 감정서를 받고 매입했다.(유씨에게 총 3건의 위작을 구입하였다)
그 작품 역시 팔려나갔다. 하지만 이후 감정서가 있지만 위작이라며 해약요구가 들어왔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법정 재소도 당하였고 고소도 했다.
건물주 유 씨의 파렴치함과 배신감에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아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목매달아 자살을 해서라도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도록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 이 고통의 시기에 인사동 화상들은 침묵하였고 마치 나는 전염병 환자 같았다.
화랑경험도 없는 초보자에겐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화랑운영은 시작도 못하고 파산했다.
후유증으로 자살을 여러 번 생각해 보았고 집으로 돌아갈까 고통과 번뇌했지만 나의 꿈을 접을 수가 없어 2006년 7월 10일 다시 화랑을 개관했다.
이번 변시지 위작사건을 보고 침묵할 수 없어 말하고 싶다.
그간 화랑계의 경험으로 보아 일부 화상들이 조금만 의식의 변화를 갖고 행동을 바꾼다면 위작은 근절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본다.
이것은 화상들 고객 작가 예술 모두가 보호받고 성공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계인 것이다.
서부 개척시대 주민모두가 보안관인 것처럼 지키고 살아남아 세계최고의 국가를 만든 것처럼 화상들이 보안관이 되어보자. 이제는 위작에 관하여 합리화 시키고 변명하지 말자.
이러한 의식전환이 안되고 계속변명하고 합리화 시킨다면 모두가 무의식의 공범인 것이다.
본인은 같은 화상들로서 위작사건이 터질 때 마다 생각이 다른 점을 발견하고 의문을 제기해 본다.
일부 선배화상들로부터 “시끄러우면 미술시장이 위축 된다”, “위작을 봐도 아니다 라고 말하지 말라, 무조건 좋다고 말해라.”, “작가도 이로울 것이 없다.”, “위작사건에 휘말리면 작품구매력이 떨어져 작품이 유통되지 않는다.” 등의 조언으로 작가에게는 무언의 회유인 동시에 협박인 것이다.
이러한 조언과 권유를 받을 때 마다 나는 분노한다.
위작을 가려내고 미술시장을 활성화 시키고 작가의 이익과 권익을 보호하여야 할 화상들이 왜 이런 생각 속에 화랑을 경영하는 걸까? 의구심과 함께 침묵할 수 없다.
우리나라 최고 작가(윤)화백을 만나 뵌 적이 있다.
윤 선생님은 인사동에 유통되고 있는 자신의 작품상당수가 가짜라고 했다.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원로 재불 작가(한) 작가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바다.
한 작가님이 수년전 전시장에서 자신의 “위작을 보고도 말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2006년12월 우리 화랑에서 어느 작가 전시가 있었다.
주변화랑에서 위작을 가져와 판매를 요청했다. 작가는 고소하겠다고 난리였다. 나 역시 “전시중이니 참아달라고 권유했다.” 그림을 갖다 준 화상을 궁지에서 구하자는 목적도 있었다.
수년씩, 수십 년 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화상들이다. 이 화상들이 대부분은 진위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구입하고 돈을 지불할 때 진품결정이 나지 않으면 화상들은 지불치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위작들이 유통될까? 수요와 공급의 원리인 것 같다.
구매자는 많은데 작품이 없다. 이럴 때는 작품이 곧 돈이다. 위작을 유통시키는 사람들은 공급 책이다.
명칭 나까마 등이 화랑들에게 작품을 공급하는데 화상들도 이들이 때로는 좋은 작품도 가져오기 때문에 신뢰할 것이다. 이들에게 받은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될시 작품 출품 처는 연쇄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상들은 여기에서 함구한다. 독립군을 숨겨주는 의로운 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위작범을 변호하는 것이다.
“화상이나 감정인들이 신이 아닌 이상 실수 할 수 있다. 고의는 없었다.”
때로는 작가들을 이렇게 모욕하고 매도한다.
“작가 자신의 나이가 많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작가가 제 작품을 어떻게 다 아냐”
“화랑에 돌아다니는 건 다 가짜라고 하고, 제 작품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다”라며 합리화 시킨다. “천경자 사건 아시죠, 천경자도 자기 작품 아니라고 했자 나요”라면서 이렇게 변명 하는 것이 전통이고 고전이다.
천경자 화백은 작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고 소장되는 것이 영광인데 천경자 화백은 왜 아니라고 항변했을까? 그 사건으로 왜 절필까지 선언했을까?
작가의 영혼과 예술세계를 좌절과 절망으로 몰아가고 매도한 사건이다.
그러나 위작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부화상들과 일부감정위원들이 비유법으로 합리화시켜 내세우는 대본이다. 작가를 재살인 하는 것과 같은 슬픈 일이다.
이제는 화상들도 이 구습에서 벗어나 위작범의 고리를 자르고 발온 하여 근절시키고 미술시장의 신뢰도를 높여 소비자와 작가 모두를 보호하고 충족시켜야 할 때라 생각한다.
작가자신도 자신의 예술세계의 권익을 위하여 “아니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화상들도 생각을 바꾸고 행동에 옮겨 대우받고 당당하게 미술계를 발전시키고 작가, 고객모두를 만족시켜 함께 예술세계를 승화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나가면 위작 범을 색출하고 근절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글에 나온 화상들은 일부 화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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