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파산 및 개인회생 신청시 반드시 필요한 부채증명서 발급이 원천 봉쇄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국내 대형 신용평가사인 H사를 비롯해 채권추심기관인 자산관리회사 및 미등록 대부업체, 캐피털을 포함한 일부 제2금융권에서 부채증명서 발급을 거부하거나 과도한 발급 수수료를 요구해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을 가로막는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불법 거부 행위가 잇따르면서 개인파산 신청 위임을 맡은 법무사 및 변호사, 개인의 신고가 금융감독원과 민간 피해신고센터에 쇄도하고 있다.
■개인파산용 부채증명발급 거부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 신청을 막기 위한 부채증명서 발급 관련 불법 행위는 △선이자 완납시 증명서 떼주기 △소재지 파악 불능 △과다한 수수료 요구 △증명서 발급 기관서 방문 거부 △발급의무 거부 등 5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부채증명서 발급을 꺼리면서 마지막까지 수익을 챙기려는 상혼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일부 대부업체는 부채증명서 발급 수수료로 20만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통상 100만원짜리 부실채권을 매입기관에서 약 2만∼3만원에 구입할 경우 발급 수수료만으로도 엄청난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1금융권과 저축은행에서 받는 부채증명서 수수료는 통상 2000원 수준이다. 최고 100배의 폭리를 취하는 셈이다.
또한 서울에 사는 K씨의 경우 본인의 은행 채무가 H신용평가사로 넘어간 것을 확인하고 H사에 방문해 부채증명서 발급을 시도했다. 그러나 해당기관에서 방문을 거부하며 우편발송수수료로 1만5000원을 요구하자 신용평가기관에서조차 발생하는 이 같은 부당행위에 울분을 터트렸다.
방문 거부를 통해 부채증명서 발급을 까다롭게 함으로써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 신청 포기를 유도하거나 발급시에도 수수료를 높게 받아 최대한 이익을 건져 내겠다는 의도다.
이밖에 개인 혼자 해결할 수 없어 법무사와 변호사 사무실에 의뢰해도 부채증명서 발급 거부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에 사는 H씨는 무등록 사채업체 8곳에 채무가 있어 법무사에 개인파산 신청을 의뢰했지만 법무사는 해당 업체와 연락이 닿지 않고 소재지를 파악할 수 없어 부채증명서를 떼지 못해 파산신청 접수를 못했다.
이밖에 인천의 M씨도 파산신청을 위해 Y자산관리회사(부실채권매입사)에 부채증명서 발급을 요청했으나 Y자산관리회사는 부채증명서 발급 의무가 없다며 거부했다. 부산에 사는 K씨의 경우 개인파산 신청을 위해 모 채권보유 기관에 부채증명서 발급을 요청했으나 이자를 완납하지 않을 시 부채증명서를 발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같은 경우 이자를 지급하면 또다시 부채증명서 발급을 미루면서 원금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이 같은 사태는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을 신청을 위해 본인의 채무를 증빙하는 부채증명서를 채권기관으로부터 발급받아 법원에 반드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부채 내역을 본인이 직접 파산신청서에 기입함으로써 부채증명서는 첨부하지 않아도 됐지만 파산신청이 급증하고 확인절차가 필요해지면서 첨부가 의무화됐다.
대부업 피해신고센터 관계자는 “제1금융권을 제외한 모든 금융기관에서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 신청을 위한 부채증명서 발급을 거부하거나 부당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이 같은 사례가 센터에 속속 접수되고 있다”면서 “과도한 개인파산 신청에 따른 채권보유기관의 손해가 거론되고 있지만 부채증명서 발급 거부행위 자체는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개인파산 무료상담소 참사랑에 따르면 이곳에 개인파산 접수자는 지난해 2배로 늘었다. 이 가운데 부채증명 발급이 거부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참사랑에 따르면 1금융권의 부채증명서 발급은 무난한 데 비해 신용정보사 및 사금융권에서는 10만∼20만원의 부당 수수료를 받고 있다. 대리인은 안 되고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는 식의 까다로운 요구를 하는 경우도 많고 연체 3∼6개월 된 경우는 거의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실정이다.
참사랑 관계자는 “부채증명서 발급기관에서 최소한 개인파산이나 개인신청을 막아 보거나 최소한 손해 보는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이자라도 받겠다는 생각으로 부당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덕적 해이 논란
이에 대해 부실채권 보유기관들의 항변도 만만치 않다.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신청을 위해 부채증명서를 무조건 발행하다 보면 소유한 채권이 휴지조각이 돼 버린다는 것이다. 신용정보회사 및 자산관리회사 등 채권추심전문회사가 보유한 채권 가운데 매월 약 1% 정도가 개인회생 및 파산 채권화되면서 휴지조각이 되고 있으며 대부업체의 보유채권도 연간 1.3% 정도가 개인회생 및 파산채권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최근 법원이 개인회생 및 파산 인가를 적극 개진하면서 개인회생 및 파산자의 수가 급증하면서 이들 부실채권 보유기관들의 항의도 거세지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개인파산의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06년 개인파산 신청자 수가 12만2608명을 기록해 지난 2005년 대비 약 3.1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회생 신청자 수는 5만6155명으로 전년 대비 15.6% 증가했다. 이는 면책 허가율이 개선되면서 채무 이행 가능자도 개인 파산을 신청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면책 허가율이 90%에 육박했던 2003년 이후 개인 파산 신청자 수는 매년 3배 이상으로 늘고 있다.
과다소비형 파산자의 경우 도덕적 해이가 극심할 뿐 아니라 재활 의지가 약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다. 또한 몇년 동안 열심히 빚을 갚던 사람들도 주변에 개인파산신청을 하고 안 갚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보고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개인과 채권보유기관 모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별도의 보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기관 관계자는 “신용회복위원회와 같은 곳에서 사전심의기구를 만들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기 전에 적부심사를 받도록 파산개인회생 및 파산의 절차와 조건을 강화하면 어느 정도 완충작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이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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