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이란 이런 거다. 12년 동안 흘린 땀방울이 무대 곳곳에 배어 있다.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작품답다. ‘명성황후’의 상징이 된 회전무대(턴테이블)가 30여 차례 쉴 새 없이 돌아가면서 장면과 장면을 빠르게 이어준 덕분일까. 참 매끄럽게 흘러간다. 창작 뮤지컬에 종종 보이는 엉성함을 찾기 힘들다. 극장을 나설 때는 “이만하면 우리 뮤지컬도…”하는 뿌듯함이 절로 생긴다.
‘명성황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소재 면에서 그렇다. 조선의 국모가 일본인 무사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사실(史實)을 소재로 삼았다. 이는 곧 논개 황진이 춘향전 콩쥐팥쥐 심청전 흥부전도 얼마든지 훌륭한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명성황후’는 정사(正史)에 충실하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황후는 피날레 ‘백성이여 일어나라’에서 “조선이여 무궁하라, 흥왕하라”고 외친다. 2시간 남짓 역사 교육을 진하게 받은 느낌이다.
다만 역사를 강조하는 바람에 인간이 들어설 자리가 좁아진 것은 아쉽다. 일본인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나쁜 놈’으로 그려진다. 고리대금으로 조선 민중을 등쳐먹는 상인들은 저질스럽고, 이들과 놀아나는 게이샤들은 난잡하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떠올려 보자. 이 영화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인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만약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일방적으로 독일인은 나쁜 놈, 유대인은 좋은 사람으로 그렸다면 이 영화는 유대교 회당에서 상영되는 걸로 그쳤을지 모른다. 스필버그는 유대인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쉰들러를 부각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나치 독일의 잔악성을 세상에 대놓고 말할 수 있었다. 절묘한 전략이다. 아쉽게도 ‘명성황후’에서는 역사와 민족이 인간을 앞선다.
제작자 겸 연출가인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1995년 초연 이래 12년 동안 ‘명성황후’의 스토리가 60% 이상 바뀌었다고 말했다. 어제 본 ‘명성황후’가 오늘 본 ‘명성황후’와 같지 않다는 얘기다.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기대해 보자.
고종 역의 윤영석은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나가는 목소리로 제 역할을 충분히 소화한다. “우리가 어디서 만났었소”라는 명성황후(이태원)의 물음에 “나의 운명은 그대”라고 노래 부르는 홍계훈 역의 서범석도 멋지다. 박상궁 역의 신소영, 김상궁 역의 곽은주가 몇 차례 들려주는 이중창은 뜻밖의 즐거움이다. 낭창낭창 버들가지처럼 티 없이 맑은 소리가 난다. 무당 진령군 역의 천주미가 덩더꿍 수태굿을 할 때는 무대에 광기가 넘친다.
‘명성황후’는 이번 서울 공연(2월 17일∼3월8일)에서 100만 관객을 넘어설 게 틀림없다. 우리 뮤지컬사(史)에 길이 남을 대기록이다. 그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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