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우리금융지주 회장 추천위원회는 회장직 공모에 응하고 서류전형에 통과한 5명의 인사에 대한 면접을 진행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면접시간은 약 40분. 이 시간 안에 자산 250조원짜리 ‘금융 항공모함’을 향후 3년간 이끌 ‘사령관 최종 후보’가 결정됐다.
이에 앞서 지난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공모에 응한 후보들이 면접을 치렀다. 이들 또한 별반 차이 없이 불과 30분 만에 면접을 마쳤고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27일 서울 모 호텔에서 우리은행장 공모자들에 대한 면접이 계획돼 있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1시간 안팎이다.
이들이 물론 서류전형에 응하면서 이력서를 냈을 뿐 아니라 금융계에서는 모두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여론은 공모 무용론의 결정적 한계를 드러내는 한 단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공모라는 취지에 맞게 심층면접을 진행해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신입직원은 합숙평가, CEO는 30분 면접
“30분 동안 뭘 말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사전에 준비해 간 회사의 발전 방향이나 비전을 제시하기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최근 금융기관 CEO 공모에 응해 면접을 다녀왔던 A씨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말이다.
은행 및 금융기관들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인성과 잠재력이 필요하다며 합숙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굳이 합숙평가를 하지 않더라도 실무진 면접과 프레젠테이션, 임원면접 등 수차례의 과정을 거치도록 해 놨다. 그러나 정작 CEO에 대해서는 30분 면접으로 당락을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면접을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하는지조차 모르는 은행도 있다.
기업은행은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어디서 얼마나 공정하게 차기 은행장 최종 후보를 뽑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낙하산 인사라도 경영능력 검증 필수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차기 행장 단독 후보로 선정돼 연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SC제일은행 존 필 메리디스 은행장도 임기가 딱히 정해진 바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우수한 실적을 기반으로 향후 SC제일은행을 계속 이끌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탁월한 실적에도 불구, 황영기 우리지주 회장은 면접에서 낙방했고 강권석 기업은행장의 연임 가능성은 낮은 실정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금융기관장에 대한 연임불가는 공공연한 불문율이 됐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행장이나 회장 추천위원회 구성원들은 대주주인 정부의 입맞에 맞는 후보를 추천하는 일종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에서 소위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더라도 최소한 경영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 봄으로써 인사 잡음을 최소화하는 것이 한국금융 국제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노조도 무조건 낙하산 인사를 배척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경영능력을 평가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vicman@fnnews.com 박성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