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 흥행 법칙 1호다.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다. 1998년 깐느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좋은 예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관객 모두를 울렸다”는 평을 받았다.
뮤지컬이라고 다를까. 등장 인물들의 감정 표현이 관객의 감정보다 앞서서 좋을 건 없다. 주인공이 별 것 아닌 일에 울면 관객은 ‘뭘 저것 가지고 울지?’라고 생각한다. 흐느껴야할 순간에 통곡을 해버리면 ‘오바한다’고 느낀다. 바로 그 순간부터 객석과 무대 사이엔 벽이 생기는 거다.
뮤지컬 ‘댄싱섀도우’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주인공들은 전쟁통에서 진한 사랑에 빠지고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하지만 관객들의 감정은 저 멀리 뒤쳐져 있다. 리뷰 중 ‘지루하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관객들이 내용에 동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설명’이 부족해서다.
주인공 나쉬탈라가 왜 숲을 지키려고 하는지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숲을 팔려는 마마아스터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나쉬탈라를 사랑한다는 솔로몬은 신다에게 자기 아이를 임신시켰는데 도통 그 속을 모르겠다.
신다와 나쉬탈라는 솔로몬을 두고 갈등하지만 관객들은 신다가 솔로몬을 대체 언제부터 사랑한건지 의아하다.
객석에 가득찬 물음표들을 없애려면 등장 인물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어쩌다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는지 왜 숲을 지키려고 하는지 관객들은 나쉬탈라의 사연을 궁금해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근위대장 페뷔스가 두 여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심경을 ‘Dechire’란 넘버로 근사하게 표출했던 것처럼 솔로몬에게도 기회를 주자.
또 신다가 한번이라도 솔로몬을 향한 사랑의 아리아를 부른다면 2막에서 나타나는 두 여인의 갈등이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게다.
살릴 부분 살리고 쳐낼 부분은 과감하게 쳐낸다면 충분히 가능성있는 작품이다. 음악과 춤이 특히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는 마마아스터와 마을 아낙들의 ‘마마를 믿어’ 와 2막 캉캉 춤 장면이 좋았다. 너무 짧은 것만 빼면. 흥겨운 분위기가 마악 살아나려는 찰나에 끝나버려 입맛을 다셔야 했다. 후반에 갑자기 등장하는 연합군의 존재는 없애는게 낫겠다. 태양군과 달군의 갈등으로 산불이 일어나는 설정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주인공 나쉬탈라 김보경의 음색은 한 음 한 음 듣기가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배해선은 언제나처럼 믿음직스러운 배우였다. 185㎝의 키를 자랑하는 솔로몬 신성록은 멋있기는 하지만 나쉬탈라와 잘 어울리는 한쌍은 아닌것 같다. 1막을 장식하는 나쉬탈라와 솔로몬의 탱고가 매끄럽지 않고 좀 힘겨워보였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넘버가 없다는 불평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박칼린 음악 감독의 자신감은 어느 정도 맞았다. 다른 넘버들은 놔두고라도 ‘그림자와 함께 춤을 추네’의 멜로디는 또렷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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