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유연해진 SK/홍순재기자

홍순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7.19 17:12

수정 2014.11.05 09:35



“죄송합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신헌철 SK에너지 사장은 회사 분할 이후 처음으로 열린 기자 간담회장(지난 13일)에 10분 정도 늦게 입장을 했다.

아주 시급한 사안이 아니면 공식석상에 거의 지각을 하지 않는 게 대개의 기업 최고경영자들인데 무슨 특별한 상황이 발생한 건지 물음표를 달 일이었다.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회장님과 회의를 하는데 중간에 일어서지를 못해서”라는 게 신 사장의 설명이었다.

회의가 낮 12시를 넘기자 불안한 신 사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사실은 오늘 기자 간담회가 있다”고 고백을 했고 최 회장은 “그런 일이 있으면 먼저 말씀을 하시지 그랬습니까”라며 서둘러 회의를 끝마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 회장은 신 사장의 간담회 일정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짐짓 놀라운 일이다. 보고에 익숙한 우리 기업들 아니었던가.

뭐든 회장에게 사장에게 부서장에게 알려야 하고 또 상관의 명령을 받들어야 하는 수직적인 기업문화, 과거에는 한국 기업의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속도 경영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는 배척해야 할 구습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이 쉽게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십년 이어져 온 습성을 하루아침에 버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SK는 변했다. 아니 변화 중이다.

SK글로벌 사태 이후 회장의 일방통보식 임원회의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토론과 협의문화가 정착됐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이후에는 각 자회사의 독립경영이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다. 신 사장이 최 회장에게 일일이 일정보고를 하지 않는 게 한 방증이다.


넥타이와 와이셔츠 대신 차이나칼라 셔츠를 받쳐 입은 신 사장의 편안한 의상에서도 SK 조직문화가 유연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namu@fnnews.com 홍순재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