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세가 연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고 나면 ‘억’이 올랐던 지난해 초 서울 강남 집값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서민들 가슴을 멍들게 했던 집값 폭등을 가라 앉혔다는 점에서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외형상 성공한 듯 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집값은 안정됐지만 시장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거래가 끊겨 시장이 죽었기 때문이다. 간혹 급매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 분위기다.
정부가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세금폭탄까지 동원했지만, 그 것도 잠시 뿐이고 거래가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인지, 올해 가을 이사철은 예년과 달리 성수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썰렁했다. 지방에서는 기존 아파트를 팔고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빈집만 늘어나고 있다.
사정이 이럴진데 정부는 여전히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빈집이 늘어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앞으로 악성 미분양 아파트는 정부가 매입, 임대를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분양 아파트를 국가 재원으로 매입하는 것은 건설업체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 올 뿐만 아니라 지방 임대수요가 얼마나 뒷받침될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나온 탁상행정 전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기조가 확실하게 다져지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시장 기능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각종 규제로 집값을 잡는 것은 ‘하수(下數)’에 속하는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수십차례 규제 중심의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국 부작용만 노출시킨채 이를 막기 위한 규제를 또 다시 불러 왔다. 규제가 규제를 낳는 악순환만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사실 규제가 필요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 선에서 규제를 둘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부동산시장은 너무 많은 규제가 얽혀 있어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 때문에 집을 사고 파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고장난 상태”라고 진단했다.
‘가격안정=시장안정’이라는 등식은 단순한 개념이고 시장이 살아 움직이면서 가격이 안정이 돼야 완전한 시장안정이라는 게 박소장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래를 활성화해 시장을 정상적으로 되돌려야 할까. 시장안정의 핵심단계인 취득, 보유, 양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취득단계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 특히 토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뉴타운이나 서울 용산 등 특급호재 지역은 대부분 투기수요이기 때문에 토지거래허가구역 등의 다양한 규제를 통해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보유단계 역시 현재의 세금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주택자들이 여러채의 집을 보유할 경우 당연히 보유세를 무겁게 매겨야 한다.
문제는 양도단계다. 현재 거래가 안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양도세 부담이 너무 커 집을 팔고 싶어도 팔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급매물 형태로 팔렸다지만 여전히 이런 물량이 많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따라서 양도차익의 1가구2주택 50%, 1가구3주택은 60%로 세금을 내는 기준을 다소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블로소득인 로또의 경우 세금이 20∼3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다주택자들의 양도세 부담은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다. 다주택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누가 팔겠냐’며 하소연이다.
또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기준도 서울 및 5대 신도시의 경우 현행 6억이하 3년 거주를 9억이하 2년 보유 및 3년 거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주택시장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방 규제 완화는 말할 나위도 없다.
주택시장은 항상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거래의 숨통을 터 줘야 한다. 규제라는 밧줄로 옥죄어 놓은 집값 안정은 ‘반쪽 안정’, ‘불안정한 안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