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김운미 무용단이 선보인 ‘묵간’ 세편 눈길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1.26 11:12

수정 2014.11.04 18:53

97년 『묵간』이 처음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된 이래, 김운미(한양대 무용학과 교수)의 ‘쿰’ 무용단이 해마다 야심 차게 기획한 『묵간』은 벌써 아홉 번째를 맞이한다. 이 작품은 24일(토), 25일(일) 양일간 밤 여섯시 춤 전용 M극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내공과 심도 추구의 기본 정신위에 펼쳐진 아홉 번째의 베일이 벗겨지자, 무극의 혼은 침묵을 뚫고 ‘인간과 그림자’의 상관관계를 조망한다. 그림자처럼 떨어질 수 없는 탐욕, 죽음, 이끌림은 가식, 여과됨 없이 역동성과 예기(藝妓)로 무장한 춤꾼들의 오브제가 된다.

선화예고, 서울예고, 국악예고, 덕원예고와 같은 고교를 졸업하고, 춤 꿈을 키워 대학 무용과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자리, 꿈의 잔디구장이나 마른자리는 더욱 아니다.

그들의 촉수엔 이끼 낀 습지가 감지된다. 아직 사막을 날고, 하늘을 나를 수 있는 물고기가 되고 싶은 것이다. 작은 나트륨에 반사되는 눈물 빛에도 동요하고, 향긋한 풀 냄새에도 감동한다.
그리고 춤 작가들은 다시 몸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김은지 안무 데뷔작『하늘 물고기,『천상어, 天上魚, Himmelfisch』는 삶의 앞길에 놓인 나의 향방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나’를 물고기에 비유한 작품이다. 물고기는 자유를 얻어 뭍을 나가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 그녀의 감각에 투영된 인상의 싱그러운 묶음들은 숭고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앙각으로 바라본 하늘은 높지만 도전해볼 만한 것이다.

불안한 현실에서 당연히 가져봄직한 발상, 이 춤은 강렬한 투신을 낳고, 상승, 점층 의미를 형상화 한다. 하늘에 걸린 긴 줄, 교차되는 끈, 하늘과 땅의 조화로운 기운은 핸드 벨과 풍경소리와 재즈 음악의 사운드를 넘어간다. 현재와 미래가 춤으로 소통하고, 호기심의 색깔들이 불협화음을 이루어도 열린 영역으로 김은지의 춤은 우리 앞에 희망을 보인다.

서연수 안무 데뷔작 『잔향,殘香,Remaining Fragrance』는 ‘향’이라는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단어의 다중적 의미를 모두 표현한 작품이다. 부드럽게 따스한 봄날 하늘나라로 떠나간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을 산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서 이별에 따른 고통을 차분하게 고한다.

여린 감성으로 디테일하게 그려낸 『잔향』은 수채화 이거나 단오풍경을 오방색으로 표현한 유화이다. 서연수의 친화성은 꽃 내음 가득한 조화성을 창출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서연수가 치유해내는 가족, 그 ‘극복의 묘’에 있다.

노장사상의 여유와 현실의 강을 건너는 신비감, 마법적 이별이 보여주는 충격들이 통곡의 메쏘드를 보여준다. 향기 있는 임의 손길을 그리는 기억은 그래도 행복하다.

이영림 안무의『갈,渴,Durst 』은 탐욕에 관한 짧은 보고서이다. 가진 자는 더욱 갖고 싶어 하고, 무산자는 포기한다. 허탈하고, 동정 없는 세상에 절규하는 몸짓이다. 폭발적 역동성과 진지한 작품 전개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의 꽃을 피워낸 많은 민초들을 떠올린다.

『갈』의 음악은 비발디의 ‘사계’가 겨울을 시작으로 순차한다. 그 발상처럼 거꾸로 바뀔 세상은 민중들의 것이다. 하부구조를 밝히는 일, 비만과 영양실조를 꼬집는 일은 불균질과 불균형의 세상에서 위태를 감수하며 ‘항아리 욕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사유희(水沙遊戱)는 ‘유리알 유희’의 낭만과 ‘무사들의 아침’을 보여준다. 부패와 부패균,배양체를 작두에 태울 듯한 이영림의 춤은 충격적 호소력을 소지하고 있다.


김운미 교수의 뚝심과 지제욱의 조련 솜씨가 돋보인 2007년 ‘묵간’은 주목할 만한 작업이었고, 의미 있었다.

/장석용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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