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귀거래사를 다시 읽으며/권용태 한국문화원연합회장·시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2.02 16:41

수정 2014.11.04 16:02

이번 제17대 대통령 선거도 여느 때처럼 후보자들마다 나라의 미래를 놓고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많은 공약을 내놓고 있다. 어느 후보의 공약인들 그대로 실천만 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걱정할 게 없을 듯하다. 경제나 교육문제를 비롯해서 비정규직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것이 없다.

따지고 보면 광복 이후 대통령을 열여섯 번씩이나 우리 손으로 뽑았다. 그래서 많은 대통령을 선출했고 또 이번 선거를 통해 직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전직 대통령도 여러분이 계신다.


그런데 현직에서 물러나면 하는 일 없이 식물인간처럼 뒷방(?)에 모셔두고 있는 현실은 지극히 안타깝다. 그것도 하나같이 서울에서 말이다. 그나마 현직 대통령이 내년 2월 퇴임 직후 향리로 돌아가서 거처할 집을 마련하고 있다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전직 대통령들께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 서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늙어 향리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는 꿈을 노래했다. 실제로 도연명 선생이 고향으로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대문호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하나의 위안이나 격려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월을 건너뛰어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이런 흐뭇한 예가 있어 우리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꽤 오래 전 서울시장을 역임하고 당시 권력층의 핵심으로 통하던 분이 한 작은 고을 면장으로서 그 고장을 위해 땀흘리면서 농민들과 함께 농로를 닦고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새참을 들며 향리의 발전을 위해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으로도 선비들이 중앙 관청에 있다가도 벼슬을 그만두면 향리로 내려와 마을 어른으로 고향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단단히 하는 사례가 많다.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 향리에 머무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공무 수행으로 국가나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은퇴 후에는 자원봉사단체나 건전한 시민단체에서 우리 사회의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하는 분도 많이 있다. 과학기술처장관을 지낸 어떤 분은 대학 총장으로 있으면서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해비타트’ 활동을 정력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아쉽지만 그 수는 미미하다. 정부 수립 이후 많은 공직자가 있었고 전직 대통령도 네 분이나 생존해 계신다.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국제해비타트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이 이따금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그가 벌이고 있는 활동이 권력은 없지만 영향력과 존경심은 그 때보다 더 높다는 것이 세계적인 여론이다.

그는 재선에 실패하자마자 고향인 조지아주로 낙향하여 선대의 땅콩농장을 일구면서 자서전을 집필하는 한편 평화봉사에 나서서 많은 국제 분쟁지역 해결사로서 노구를 이끌고 왕성한 활동으로 여념이 없다.

새해에는 부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조리며 고향에서 저마다의 경륜과 노하우를 향리에서 전수해 주는 모습을 보고싶다.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정치적이나 관료적인 끈을 이어가기 위해 서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문화단체나 사회봉사단체 또는 자선단체에서 봉사하는 것도 여생을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일 터다.


더구나 참여정부의 국정지표 중 하나가 분권과 자율이다. 국가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 지역문화 향상과 활성화에 발벗고 나서는 모습은 또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올해는 네 분 중 한 분이라도 향리로 돌아가 유유자적하면서 사회의 원로로, 고향이 낳은 인물로 존경을 받으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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