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 레몬과 복숭아/최성환 대한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2.05 16:40

수정 2014.11.04 15:47

최근 우리 경제를 보면 “혹시 레몬(lemon)이 아닐까 그것도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는 레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레몬은 오래돼 거의 썩을 지경이 되어도 겉은 멀쩡하다. 겉은 번드레하면서도 속은 다 썩은 중고차를 레몬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말의 ‘빛 좋은 개살구’ 또는 ‘속빈 강정’에 해당하는 표현이 레몬인 셈이다.

우리 경제의 최근 성적표는 싱싱하게 보이는 레몬에 못지않게 화려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 2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주가는 2000선을 넘나들고 있다. 상품(무역)수지가 수년째 200억∼30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외환보유액은 2600억달러를 웃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까지 2%대에서 안정돼 있고 실업률은 3%대에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성장률이 4∼5%대로 예전만 못하긴 해도 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는 선진국이라는 점에 잣대를 맞추면 이만한 성장세를 보인 나라를 찾기도 어렵다. 이 정도의 성적이라면 온 국민이 기뻐하면서 확신에 찬 미래를 내다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기업이나 국민이나 희망찬 미래보다는 불안한 내일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최근 우리 경제가 나름대로 좋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를 하나만 들라면 단연 수출이다. 전 세계적인 고성장과 환율 여건에 힘입어 수출이 호조세를 계속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2004년부터 시작된 5% 안팎의 높은 성장세가 내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환율이 달러당 900원선을 위협하는 등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외환위기 전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불과 2∼3년전만 하더라도 환율이 달러당 1000∼1150원대에서 움직였으므로 외환위기 전 750∼850원대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엄청나게 높아진 상황에서 만들기만 하면 수출이 되는 경우였다.

이에 따라 수출이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로 고공비행을 하면서 소비와 투자 부진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수출 호조는 우리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300%를 넘던 부채 비율이 최근 100% 아래로 떨어졌을 뿐아니라 상장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53조원을 넘고 있다. 기업의 성적표가 이처럼 좋아지면 주가도 오름세를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수출 위주의 성장은 양극화라는 부산물도 가져왔다. 수출 기업과 내수 기업의 양극화는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도시와 지방, 고소득층과 저소득층도 수출에 따라 울고 웃었다. 아울러 개인들은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늘리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최근에는 집값이 하향 안정세로 돌아선 가운데 대출금리까지 오르면서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냉랭하기 짝이 없다.

이런 와중에 단발 엔진인 수출 전선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과 그로 인한 신용불안이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어서 미국 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국과 인도 등 잘 나가는 신흥 시장국들이 미국 시장을 대체할 것이라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의 경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연착륙에 실패할 경우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다 원유와 광물, 곡물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간 안정세를 보였던 주요국의 소비자물가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지난 11월 지전년 동월 대비 3.5%로 뛰어 올랐다. 결국 전 세계가 성장은 둔화되고 물가는 오름세를 타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의 변화가 더 두려운 것은 국내 소비와 투자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의 과제와 역량은 어떻게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껏 레몬에 속아온 국민은 이제 복숭아를, 그것도 겉이 멀쩡한 복숭아를 원하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를 가능성이 높은 레몬과는 달리 복숭아는 겉이 좋으면 속도 좋은 믿을 만한 경우를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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