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붓을 던져버렸다. 신체의 일부인 손바닥과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직접 캔버스에 바르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호흡을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한 획 한 획 살아 있는 선과 면의 율동은 화면이 숨을 쉬고 있는 듯 거대한 분수처럼 생기를 뿜어낸다.
청색으로 평면회화 작업을 해온 김춘수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7일부터 23일까지 ‘김춘수 개인전’을 개최한다. 2006년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아트페어에서 전시한 지 2년만이다.
1990년대 초 ‘수상한 혀’ 시리즈를 선보였던 김춘수는 이번 전시에서 ‘울트라-마린(Ultra-Marine)’ 시리즈 40여점을 전시한다. 울트라-마린 시리즈는 흰색 바탕부터 순수한 청색 자체에 이르기까지 청색의 모든 스펙트럼을 역동적인 방법으로 펼쳐놓는다. 특히 울트라-마린은 사실 청색물감의 명칭이지만 작가는 그 이름 본래의 의미인 ‘바다 건너편’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유토피아를 형상화한다.
1996년 상파울루비엔날레의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던 김춘수는 이를 계기로 작업의 방식이 약간 달라졌다. 그 이전에는 획이 수직으로 그어지면서 마치 숲, 폭포수, 계곡을 연상시키는 빽빽한 그림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한결 여유로워진 가로 방향의 유동적인 선들을 통해 하늘, 하늘의 구름, 바다 등을 연상시키고 있다. 재료도 아크릴물감에서 유화물감으로 바뀌었다.
자신과 동명이인인 김춘수 시인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중략)’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말로서 전달하기보다는 소리로서 의미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특정 사물을 구체적으로 지칭하고 무미건조하게 말하면 글자만 전달되지만, 거기에 감정을 실어 말하면 진정성이 함께 전달되는 것처럼 시(詩)의 소리를 회화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에 사용하는 청색은 삶과 연관한 철학이면서도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 과정인 명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자연을 대변하는 색감으로써 동쪽에서 해가 뜨듯이 우리 삶의 희망을 상징한다.
미술사가 게르하르트 룸프는 김춘수의 작품세계를 일컬어 “그의 청색은 작가 내면에 무형의 유산으로 영속되어 온 동양미학의 정신이 서양회화의 전통과 만난 정점에서 번져 나오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고 평한 바 있다.
1993년 제3회 토탈미술대상을 수상하고 2006년 대한민국예술원에서 수여하는 우수예술인에 선정된 김춘수의 작품은 로스앤젤레스 LA아트코어센터, 삼성미술관, 선재현대미술관, 성곡미술관, 토탈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포스코센터, 한솔문화재단 등에 소장되어 있다.
/noja@fnnews.com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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