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선진기업 흥망사에서 배우자] <1> 선사시대 공룡의 멸종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5.06 20:35

수정 2014.11.07 05:41



환율, 유가, 원자재가격의 고공행진으로 대내외 경제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한국산업계의 미래'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발 경제위기론과 함께 한국 경제 앞날도 시계 제로에 놓이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미 이건희 전 삼성그룹회장은 '선사시대 공룡의 멸종론'을 주창하면서 삼성그룹도 선사시대의 공룡처럼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받을 수 없는 만큼 10년 뒤 20년 뒤에 삼성이 먹고살 수 있는 미래 신수종 사업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 한 바 있다.

유럽이나 미주의 선진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원한 기업은 없고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패망한다'는 진리 속에서 위기관리 경영에 몰두하고 있다.

본지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선진국가들의 '성장 기업'들 중 급변하는 경영환경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성장의 한계'라는 쓴맛을 본 후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는 기업들을 심층 취재해 한국경제의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기획물을 총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특검여파로 위기 국면에 봉착했던 삼성그룹에서는 최근 ‘공룡 멸종론’이 화두가 됐다. 이건희 당시 그룹 회장은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그 현실을 파악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초일류기업 삼성도 공룡처럼 한 순간에 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장시간 세계시장을 지배해왔던 거대 기업들의 몰락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20세기 말 이후 급속히 진행된 정보통신(IT) 혁명을 비롯한 산업구조의 변화로 크게 달라진 경영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기업의 쇠퇴는 일반적으로 ‘쇠퇴 징후 출현→해체 또는 구조조정 실시→일시적 회복→위기의 재도래’ 등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내부병폐가 장기간 누적되는 과정이랄 수 있는 이 같은 수순을 밟은 기업이라면 일시적 처방으로는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변하지 않으면 최강은 없다.

2006년 프랑스의 알카텔에 합병 당한 미국의 루슨트테크놀로지사는 1996년 미국 AT&T사에서 분리해 나올 당시 매출 40조원, 전 세계 12만5000여명의 종업원을 둔 세계 최대 통신기기 제조업체였다.

그러나 1999년 이후 매출과 이익이 계속 줄어 들었고 유·무선사업을 재편하고 광섬유 공장 2개와 계열사들을 잇따라 매각하고 수만명의 인원감축조치까지 단행해야 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루슨트테크놀로지의 고전에 대해 유선 전화시대에 고착된 체질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루슨트가 과거 기술에 안주하는 사이 인터넷을 바탕으로 기존 교환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들이 잇달아 등장, 시장을 잠식하는 시대상황을 따라잡지 못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20세기 유통업태에 변혁을 주도하며 세계 최대 소매유통업체로 군림했던 미국의 대형 할인점 K마트도 2002년 파산의 길을 걸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K마트의 몰락 또한 원인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고객서비스 부실과 방만경영이었다.

K마트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윌마트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만에 빠진 K마트는 1990년대 후반 쇼핑최적지를 찾아다니는 월마트의 발빠른 상황대응을 도외시한 채 임대료 절감 등에 더많은 신경을 썼다.

또 차별화된 기업의 핵심역량 전략에서도 월마트에 추월당했다. K마트는 신규점포 확장 전략에 과도하게 집착했고 자사브랜드공급에 치중, 구매자로부터 외면받았다. 반면 월마트는 철저한 고객만족과 효율적인 물류시스템을 통해 경쟁우위를 이끌어냈다.

물론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속적인 매출감소와 월마트와의 가격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 이에 따른 현금유동성 부족, 금융시장 불안 등이었다. 하지만 핵심역량 강화를 통한 새로운 수익구조 창출에 실패한 것이 직접적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는 없다

매킨지 컨설팅사의 2001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기업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지수포함 기간은 갈수록 짧아졌다. 1920∼1930년대에는 S&P리스트에 포함된 90개 기업의 연평균 교체율은 1.5%였다. 그러나 1998년에는 500대 기업 중 10%에 달했다.

또 1930년대에는 65년 정도 지수에 머물렀으나 2000년 이후에는 10년 정도로 줄었다.

한국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 2005년 말 기준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686개 기업(관리종목 제외)의 평균 연령은 32.9년이었다. 반면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934개 기업은 16.7년으로 거래소 상장기업의 절반이었다.

거래소 상장기업의 평균 연령을 볼 때 기업의 평균 수명이 30년 정도라는 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1965년 100대 기업 중에서 4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순위권 내에 존재하는 것은 LG전자, 기아자동차 등 12개 뿐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더욱 생존율이 낮아 2004년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설립 10년도 안된 기업이 전체의 55%였고 평균연령은 11.1년에 불과했다.

일본에서도 기업몰락이 줄을 이을 때인 1980년대 후반 한 신문사가 조사한 결과 일본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통상 설립 30년이 지나면 80%의 기업이 사라진다는 통계수치를 볼 때 기업들이 웬만한 조건에서 100년을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할 수 있다.

■쇠퇴 징후에 민감해야 한다

70년 이상 세계 자동차시장을 주름잡았던 제너럴모터스(GM)가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쇠퇴한 배경에는 기업 내부의 누적된 병폐가 있었다.
퇴직자와 부양가족까지 챙기는 과도한 복지비용과 대립적 노사관계, 유럽·일본 완성차업체에 뒤처진 경쟁력 등을 구조적으로 해소하지 못해 현재의 위기 국면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스스로 쇠퇴징후를 적절히 포착해 선제대응하지 못하면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한창수 수석연구위원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우 기업생존에 관건이 되는 요인을 140개로 압축해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자가경보기능을 갖고 있다”면서 “환경변화에 대한 감지능력을 제고하고 한발짝 앞서 구조조정 및 혁신활동을 펴는 한편 무엇보다 본업경쟁력을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sky@fnnews.com차상근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