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 윤진섭의 ‘문화탐험:몸의 언어, 21세기 문화지도를 그리다’(11회)
프랑스의 여성 작가 중에 올랑(Orlan)이란 사람이 있다. 그녀와 나와의 인연은 좀 각별한 데가 있다. 2000년, 필자가 인사동에서 열린 제1회 서울국제행위예술제(SIPAF)를 조직했을 때 그녀를 초청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운영위원장 겸 예술총감독의 직책에 있었던 나는 세계 100대 여성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녀를 초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해도 그녀와 선이 닿지 않는 것이었다. 필자는 하는 수 없이 무작정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얻어 걸린 것이 그녀의 홈페이지. 필자는 정중하게 이메일로 편지를 썼다.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참가해 줄 수 없겠는가. 곧바로 그녀에게서 답신이 왔다. 한국, 가본 적은 없지만, 당신의 열정에 흥미를 느낀다. 가겠다. 와우!
행사 준비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어서 접촉한 것이 호주의 스텔락(Stelarc). 인조 팔을 단 몸을 수만리 떨어진 곳에서 컴퓨터로 조작하여 움직이게 하는 일렉트로닉 퍼포먼스의 대가다. 필자는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 있는 그를 찾아내서 강연 장소인 선재아트센터 극장에 세우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다. 실로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거사였다.
그런데 개막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어느 날, 올랑에게서 긴급 메일이 왔다. 서울에 꼭 가고 싶지만 빡빡한 스케줄로 인해 체력이 소진되어 장거리 여행을 하기가 곤란하다는 것, 그래서 작품이 담긴 DVD를 보낼 터이니 그걸로 대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후 그녀의 작품은 인사아트센터에서 방영이 되었다.
정작 필자가 그녀와 상면을 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갤러리세줄 개관기념전 오픈식에서 였다. 갤러리세줄은 개관기념전으로 올랑을 초대하기로 결정을 했고, 그때 나는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서문을 썼다. 그녀와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고자 한다.
올랑은 온몸을 던져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몸 자체가 하나의 실험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나의 몸을 예술에게 바쳤다”고. 성형수술 퍼포먼스로 유명한 그녀의 이 말 속에는 봉헌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수술대에 맡김으로써 단지 말뿐이 아닌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발언을 입증해 왔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없으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성형이 예술이 된다(?). 우리는 성형수술이 예사로 행해지는 현재의 풍토에서 그녀의 선구자적 면모를 발견한다. 그것은 그녀의 작품세계가 지닌 미학적 뿌리로부터 나온다. 좀더 예쁜 얼굴을 간직하기 위해 행해지는 요즈음의 성형수술과는 달리, 그녀의 성형수술 퍼포먼스는 보다 심오한 미학적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녀는 일단 전통적 미의 관념에 도전한다. 일찍이 그녀가 행했던 성형 퍼포먼스,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비너스, 성모 마리아 등 명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얼굴 일부를 합성하여 자신의 얼굴을 성형한 작품은 이의 대표적인 경우다. 그녀의 이 작품은 ‘과연 무엇이 미(美)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 결과다. 그것은 미의 절대적 가치기준의 부재, 나아가서는 미의 상대성에 대한 강력한 이의제기이자 저항이다. 그러한 저항이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겨진 것은 최근 몇 년간의 작업을 통해서다. 아프리카 원주민 여성들의 문화적 습속, 예컨대 아래 입술을 째고 흙으로 만든 원반을 끼워 넣는 관습을 컴퓨터 합성으로 구현해 내는 일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마에 봉긋이 솟은 두 개의 뿔을 지닌 올랑은 작업에 따른 영감을 얻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 중에서 특히 아프리카와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방문은 고대 이방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서 그녀는 많은 것을 보았고 진귀한 문화적 체험을 했다. 문신을 비롯하여 피부절개, 반인반수, 가면, 입무식, 희생제의 등 이국의 다양한 문화적 형식은 그로테스크한 얼굴 이미지의 합성에 필요한 풍부한 자료의 보고가 되었다. 그녀는 컴퓨터 합성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형식들을 뒤섞는다. 이제 컴퓨터가 쏟아내는 이미지들은 하나의 문화적 혼효(混淆), 즉 문화적 상징들이 뒤섞이는 장(場)이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컴퓨터는 그녀의 상상력을 통해 실제와 가상을 결합시키는 최적의 매체다.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에 고대 원시 부족의 다양한 문화적 형식과 상징을 혼합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미술을 향한 하나의 전략을 내세우게 한다.
필자는 일찍이 어느 글에선가 그녀의 이러한 작업을 가리켜 “문신, 피부절개, 뿔 이식, 귀 장식, 보석 상감과 같은, 희생제의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적 형식들은 컴퓨터의 가상공간에서 그녀의 얼굴과 합성되어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바뀐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일찍이 마이클 하임(Michael Heim)은 가상현실의 체험이 가져온 경이롭고 혁명적인 변화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가상공간 속의 사물들은 20세기의 마지막 30여 년 동안에 나타난 폭넓은 문화현상, 곧 ‘컴퓨터화’돼 가는 현상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는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를 예로 들어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컴퓨터 매트릭스 상에서의 사물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늘상 겪는 일상적 경험들은 오히려 지루하고 비현실적이다.
올랑은 문화 테러리스트이자 금세기 최고의 전위예술가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천사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자칼이다.” 이 외침, 이 선언은 괴수와 인간, 신과 인간을 결합한 기묘한 형상을 통해 미의 절대적인 기준에 던지는 그녀의 몸의 저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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