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중진작가 전광영 “세계 무대 섭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8.04 15:34

수정 2014.11.06 07:48

‘한지 부조’로 유명한 중진작가 전광영(64)이 세계 무대에 진출한다. 오는 9월 4일 미국 뉴욕의 로버트 밀러 갤러리 초대전을 시작으로 12월 14일 코네티컷 얼드리치 현대미술관, 그리고 내년 2월 14일 일본의 모리미술관에서 잇따라 초대전을 여는 겹경사를 맞은 것이다.

뉴욕 로버트 밀러 갤러리는 페이스 갤러리·가고시안 갤러리와 어깨를 견줄 만한 세계 정상급 화랑. 장 미셸 바스키아, 쿠사마 야요이 등 세계적인 작가가 이 화랑을 거쳐갔다. 또 코네티컷에 있는 얼드리치 미술관은 크지는 않지만 ‘살아 있는’ 생존작가만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명성이 자자하며 유명도에서 휘트니 미술관이나 구겐하임 미술관의 뒤를 잇는 수준이다. 특히 미술 애호가인 영화배우 폴 뉴먼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안젤름 키퍼, 솔르윗, 줄리안 오피 등 현재 세계 미술계를 주름잡는 거장들이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초대전을 갖는 일본의 모리미술관도 도쿄 도심의 건물 52·53층에 자리잡고 현대미술에 강점을 보여온 미술관으로 전광영은 52층 한개 층을 모두 사용한다. 작가라면 한번쯤 전시하고 싶은 공간에서 초대전을 갖는 그의 각오는 남다르다.

전광영은 “전시 제목 ‘한국의 정신, 미국으로 여행하다(The Soul Journey To America)’처럼 한국의 혼을 미국에 심는 전시회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한국 작가들은 그동안 중국이나 일본 미술에 비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현대미술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저의 전시회를 통해 한국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저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전광영의 작품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삼각형으로 자른 스티로폼 덩어리를 한지로 싸고 다시 그 위에 끈으로 묶은 다음, 이를 화판에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100호 짜리 작품 하나에 약 7000여 개의 한지 조각이 들어가며 삼각형의 스티로폼을 한지에 싸서 붙이는 과정에서 최소 2만번 이상의 손길이 간다.

▲ 전광영의 ‘집합’ 시리즈

특히 작가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인 고서를 사용하고 작은 삼각형과 사각형의 입방체들을 화면 가득히 붙임으로써 사각 평면에 무한의 시간과 공간을 담아낸다. 무채색의 화면에 작은 면들이 엄격한 기하학적 구조물처럼 긴밀하게 짜여 있는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들은 미니멀한 평면작품이면서도 외부 조명에 의한 그림자 효과 때문에 강한 입체성을 띤다.

미국과 일본의 초대전에는 ‘집합(Aggregation)’ 연작이 선보이는데 전시공간에 따라 작품에 약간씩 변화가 주어진다. 먼저 로버트 밀러 갤러리에는 새로운 작품인 ‘블루’를 전시한다. 쩍쩍 갈라진 대지나 분화구 혹은 돌담 같은 질감을 흑백이나 누르스름한 색으로 담아온 ‘집합’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분화구의 색은 일일이 파란 염료로 물들인 한지를 사용해 파랗다.

그는 “화면은 황폐한 대지를 상징한다.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없는 대지에 ‘희망’을 심기 위해 블루를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또 얼드리치 미술관에는 ‘우리 현대인을 비웃고 질타하는 듯한’ 삐딱한 두상 모양의 입체 작품을 선보인다. 병든 사람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인데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신적으로는 황폐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모리미술관에는 검게 병든 심장을 표현한 입체 작품을 역시 새롭게 내놓는다. 옛날에 ‘마음이 상하면 속이 새까맣게 탄다’는 말이 있듯이 불안한 현대인의 망가진 심장을 표현한 작품이다. 약간 불안하게 땅 위에 떠 있는 이 작품은 바로 온갖 고난을 헤쳐온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다.

미술평론가 조너선 굿맨은 전시평 ‘두 문화의 산물’이라는 글을 통해 “한지로 싼 작은 삼각형으로 표현되는 전광영의 질료는 개인적인 것임과 동시에 추상적 형태의 공명정대함을 선언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은 그의 삶에 관한 특정한 부분이나 잃어버린 문화에 대한 서정적 함축, 정치적 의미를 강조하려는 함축이 깃든 한 가지 이상의 의미로 읽혀진다”고 말한다.

전시를 앞둔 전광영은 “목숨을 걸고 뛴다”며 결전을 앞둔 전사 같다. 자신이 결코 평탄하지 않은 길을 것어온 탓일 것이다.

하지만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평면과 입체의 벽을 허문 그가 이제 세계 무대에 우뚝 솟는 작가가 되길 희망한다.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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