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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를 버리고 실리를 취하라” 회장님들의 짠물철학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01 09:15

수정 2008.12.01 09:15



# 지난 2000년대 초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약속장소로 이동한 후 이전처럼 운전기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3시간 기다려야 하는 모임이어서 운전기사를 기다리도록 하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모임을 마친 신 회장은 직접 운전을 하고 집으로 향했고, 집에 가는 도중에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차량은 크게 부서졌지만 다행히 신 회장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 지난 2000년대 초반 서울 등촌동 하이트맥주를 방문한 외국 애널리스트들은 깜짝 놀랐다.
기업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본사 건물이 너무 허름했기 때문이다. 당시 비가 왔는데 사무실 천장에서 비가 새 비서가 비를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영등포공장을 팔고 강원도 홍천에 공장을 세우면서 사옥을 회사 규모에 맞게 시내로 본사를 이전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박 명예회장은 “밖으로 드러내는 허세가 기업에는 최대의 악덕”이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남부럽지 않는 기업 규모를 이뤘음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허세를 버린 모습을 보여준 최고경영진의 사례들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이들 경영자들의 자세는 최근 문어발식 확장 등의 방만한 경영을 하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C&그룹과 대비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개성상인 또는 일본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경영인들의 특징은 남들의 시선보다는 실리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층의 건물을 짓는다던가 또는 이동할 때 한 무리의 수행원을 이끌고 움직이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이 같은 개성상인 또는 일본 출신 최고경영진들의 경영철학은 고스란히 임직원들의 마음에 심어지게 됐고, 이는 결국 위기상황을 넘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내화외빈, 허례를 버리고 실리를 취한다.

고인이 된 고 박경복 하이트맥주 명예회장은 1주일에 2∼3차례 전북 전주와 경남 마산에 있는 생산공장을 찾았다. 그때 박 명예회장이 이용한 교통수단은 기차. 기사를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서울역이나 영등포역까지 이동해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공장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편하게 갈 수도 있었지만 한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차를 놔두고 기차를 이용한 것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임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OB맥주에 눌려 만년 2위 시장점유율에 머무르던 조선맥주 시절을 넘어 지난 1996년 1위자리에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남양유업의 경영은 근검절약과 보수경영이 근간이다. 평북 영변에서 태어난 홍두영 남양유업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고등학교와 와세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면서 일본 문화를 배웠다.

국내 분유업계 1위업체인 남양유업은 사옥이 없다. 서울 남대문로 대일빌딩(지상17층) 6개층을 임대해 본사로 쓰고 있다. 지난 71년 이곳으로 이사온 후 38년째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제품생산, 생산성 향상과 관련 없는 곳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겠다는 홍 명예회장 부자의 경영방침 때문이다.

현재 남양유업은 5000억원 규모의 여유자금(사내유보금)을 은행에 예치하고 있지만 사옥매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고 경영자의 기차 이용, 셋방살이 등은 자칫 직원들의 사기저하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초심을 잃지 않은 이들 경영인들의 자세는 최근 불황으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기본에 충실, 한우물 경영

대표적인 개성상인 기업인인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은 30년 식품외길을 걸어온 대표적인 장인기업가이다.

지난 1946년 일본인 회사였던 ‘삼시장유양조장’을 부친인 고 박규회 회장이 인수, 30년을 지켜온 샘표식품을 이어받아 본인이 32년을 경영해오며 대한민국 최고의 장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대에 걸쳐 60여년간 한우물만 파고 있는 것이다.

한우물 경영 때문에 회사가 외형성장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60년을 지나온 지금 간장 단일 품목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을 건설한 만큼 성장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박 회장은 말한다. 그의 고집 덕에 샘표간장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국민간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오뚜기도 오로지 식품 한 길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은 성실함으로 유명한 개성상인 출신인 함태호 회장이 식품에만 매진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만한 경영보다는 잘 할 수 있는 ‘하나’에만 매진해 신뢰를 쌓아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오뚜기는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이 외형성장에 치중할 때 이들 기업은 한우물만 파는 길을 택했고 그러다 보니 이들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국민제품이 됐다”며 “한우울 경영이 불황에도 끄떡없는 탄탄한 체력을 비축케 했다”고 말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윤정남 박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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