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새해로 넘어간 ‘한은의 CP 매입’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24 19:00

수정 2008.12.24 19:00



성탄 선물은 없었다. 시장 일각에서는 24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중앙은행이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했으나 허사였다. 20조원 규모의 은행권 자본확충펀드 조성에 한은이 10조원을 대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년 초에 열릴 차기 회의로 넘어갔다. 단지 금통위는 내년 1·4분기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지금과 같은 9조원으로 유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총액한도대출제는 중소기업 대출과 연계해 한은이 시중은행에 싼 이자로 빌려주는 제도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로서는 한은의 ‘냉정한’ 결정이 야속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일찌감치 CP 매입에 착수한 미국 연방중앙은행(FRB)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금통위 직전에 연구소·학계 관계자들과 가진 경제동향 간담회에서도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뚜렷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금통위는 한은법 상 ‘통화신용 수축기’ 때 비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CP 매입에는 엄격한 선을 그었다.

이 총재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건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11일 전격적인 금리인하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은이 비상사태 수단을 써야 하는 경계선에 와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일탈’도 가능하단 얘기다. 다만 아직은 그럴 시기가 아니라는 게 이 총재를 비롯한 대다수 금통위원들의 견해로 파악된다. 그보다 지금은 은행 자본확충펀드와 채권안정펀드, 중기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인 패스트 트랙을 본격 가동시켜 과연 이래도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지 지켜볼 단계라는 것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3%까지 떨어뜨린 것 역시 금융경색 해소를 겨냥한 조치다.

사실 현 시점에서 유동성 공급을 더 늘린다고 경색이 풀린다는 보장도 없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신속한 구조조정이다. 내년 초부터 부실기업 솎아내기가 본격 진행되면 한동안은 시장이 더 큰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고통스럽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국 경제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다만 한은으로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이미 내놓은 카드가 먹히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마련해둬야 한다.
CP 매입은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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