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아침] 한류의 미래를 위하여/정순민 문화레저부차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26 19:26

수정 2008.12.26 19:26



“불씨만 남아있을 뿐 거의 다 꺼졌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지난 23∼24일 일본 도쿄돔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펼친 가수 겸 탤런트 류시원이 한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불씨만 남았을 뿐 다 꺼졌다고 말한 건 다름이 아니라 ‘한류(韓流)’ 얘기입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맹위를 떨치며 승승장구하던 한류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99년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기관지인 ‘청년보’가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인에 열광하는 현상을 가리켜 처음으로 ‘한류’라는 용어를 사용한 지 꼭 10년 만의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열 살이라는 나이는 사망 신고를 내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임에 분명합니다. 류씨의 말을 곱씹어 봐도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한류가 생명을 다했다’는 절명(絶命) 선언이 아니라 ‘그래도 아직 불씨는 남아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의 연예인과 기획사들이 말로만 ‘한류, 한류’할 게 아니라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이런 생각에 힘을 실어줍니다.

한류가 열 살을 맞는 기축년(己丑年)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류가 왜 사그라들고 있는지 면밀하게 점검해보는 것입니다. 병인(病因)을 제대로 밝혀내야 올바른 처방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류씨의 말마따나 업계 일각에서 한류를 일회성 돈벌이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한류를 등에 업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한탕주의’는 우리의 미래를 좀먹게 하는 맹독(猛毒) 바이러스일 뿐입니다. 한류를 빌미삼아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데만 관심을 가져온 일부 연기자와 연예기획사들도 자숙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주연급 배우들의 거액 개런티는 콘텐츠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동어 반복과 자기 복제라는 악순환의 고리도 이참에 끊어야 합니다. 얼마 전 출장길에서 만난 일본의 한 한류 팬은 “부잣집 딸과 능력은 있지만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배다른 남매였고 둘 중 한 사람은 몹쓸 병에 걸려 죽을 운명에 놓이게 된다”며 한류 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텔링을 꼬집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그의 말에는 불륜과 배신, 출생의 비밀 등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한류 드라마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해 가슴 뜨끔했습니다. ‘스타만 있고 스토리는 없는’ 기존의 한류 드라마 문법만으로는 꺼져가고 있는 한류의 불씨를 다시 살려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류를 앞세운 공격적인 마케팅도 꼭 바람직한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노골적인 영토 확장과 국가주의적 시장 접근도 한류 지속화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지난 여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에 불어닥친 혐한 감정은 한국을 지나치게 앞세운 한류 탓도 조금은 있었던 듯합니다.
일방 통행식 문화 전수가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쌍방 교류의 관점에서 한류를 바라볼 때 뜻밖의 돌파구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삼성이라는 제조사명을 숨기고 하우젠(Hauzen)이라는 브랜드만으로도 고급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의 프리미엄 가전제품들처럼 굳이 한류를 브랜드로 내세우지 않더라도 좋은 콘텐츠는 누구나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결국, 문제는 다시 콘텐츠입니다.

/jsm64@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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