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무역입국의 그늘,밀수 밀화] <18>기장해변 죽도밀수사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1.27 16:56

수정 2009.01.27 16:56



3·15 부정선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드디어 하야성명을 내고 권좌에서 물러난 지 사흘 후인 1960년 4월 29일. 그야말로 나라는 무정부 상태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그날 새벽에 지금의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도 부근에서 어둠 속을 달리던 한 특공대 밀수선이 암초에 걸려 오가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아침 일찍 마을청년들이 밀수선을 발견했을 때는 밀수꾼은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마을 청년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부산세관 이상철 심리과장은 긴급히 직원들에게 비상소집을 건다. 응소직원은 7명. 2개 반으로 나눠 감시선과 차량 편으로 각각 현장에 출동시킨다.
마을에 당도한 세관원은 주민 20여명이 밀수품(당시 시가 약 2000만환)을 가운데 두고 웅성대고 있는 마을회관을 찾았다.

먼저 세관원 신분을 밝힌 뒤 주민들에게 밀수품을 인계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반응이 없다. 그리고 주위에는 어느새 100여명의 주민이 모여들었다. 간간이 “이승만이 날아갔는데 무슨 놈의 세관이냐?” “주민들이 잡았으니 갈라 먹자” “어떤 ×이 신고를 했어” 등등 불신이 팽배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근 마을에서 소문을 듣고 달려온 주민까지 합쳐 거의 300명으로 불어났다. 한두 사람이어야 실력행사를 해보겠지만 이렇게 많은 주민들 앞에서 밀수품을 보고도 처리를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 설득을 해봐도 먹히지 않아 결국 계엄사령부에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약 1시간 후에 육군대위 인솔 하에 15명의 병사가 도착하고 이에 힘을 얻은 세관원이 재차 설득을 하였으나 역시 막무가내였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본 계엄사령부 지휘관은 자신의 위신과 국가기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병사에게 집총을 시키고 세관 직원에게 밀수품을 감시선으로 운반하라고 길을 터주었다.

처음 주민들은 물러서는 듯하더니 가정에서 사용이 가능한 의약품·비로드·화장품 등 생필품이 대부분인 밀수품 더미에 세관원들이 손을 대는 순간 무서운 군중으로 돌변했다. 마치 자신들이 포획한 물품을 남에게 뺏겨서는 안 된다는 듯이 고함과 돌팔매질을 하며 달려들었다.

밀수품을 들던 세관원은 혼비백산이 되어 피신을 하고 동네청년들은 반항하는 한 세관원을 잡아 무조건 구타를 한다. 순식간에 마을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집단구타를 당한 세관원은 피투성이 되어 살려 달라고 소리친다. 야전용 지프가 어느새 응급차로 변해 불을 밝히고 부산방면을 향해 질주한다.

40여분 후에 난동진압 응원군인 1개 소대 병사가 기장 바닷가에 나타나자 겨우 수습됐다.
밀수품은 모두 세관에 인계됐다. 밀수품을 실은 감시정의 유리창은 박살이 났다.
바로 무정부 하에서 일어난 밀수사건을 통해 국가기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

■사진설명=생필품이 대부분인 특공대 밀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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