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가 너무 많아서 온갖 수난을 당하는 책도 있다. 호주 출신의 아기 사진 작가 앤게디스의 사진집 ‘Autobiography’는 군데 군데 찢기고 구겨진 곳 투성이다.
이 책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귀여운 아기 사진이 가득하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손에 쥐었다하면 놓질 못한다.
문제는 2.5kg쯤 되는 책의 무게다. 어지간한 노트북보다 무거운 책을 손에 들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떨어뜨리거나 실수로 찢는 일이 잦다. 이렇게 파손된 책은 팔수도 없어 고스란히 서점의 몫이 된다.
‘프리미엄 북스’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2∼3kg을 넘는다. 손에 들고 보기엔 부담스럽다. 때문에 매장 한켠에는 어린이 키만한 독서대와 손 때가 탈 것을 염려해 마련한 면장갑이 준비돼 있다. 하지만 이를 사용하는 고객은 극히 소수다.
그렇다면 영광의 상처가 가득한 앤 게디스의 사진집은 개관 이후 얼마나 팔렸을까. 정답은 0부. 고생은 있는대로 하고 실속은 챙기지 못한 셈이다.
■같은 책도 명품관에 입성하면 세배 이상 ‘껑충’
똑같은 소설책도 이곳에 입성하기 위해선 몸값을 세 배이상 부풀려야 한다. 민음사가 올초 세계문학전집 200권 간행을 기념해 선보인 ‘세계문학전집 특별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거미여인의 키스, 햄릿,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고도를 기다리며, 이반데니소비치-수용소의 하루, 변신-시골의사, 동물농장, 오만과 편견, 구운몽, 데미안 등 10권으로 구성된 특별판의 가격은 25만6000원. 만약 똑같은 작품을 동일한 출판사의 일반 도서로 구입한다고 가정하면 7만4000원이 든다.
무려 3.6배나 가격이 뛴 이유는 유달리 공들인 디자인 때문이다. 한 세트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는 책들은 모두 이상봉, 안상수, 이돈태 등 유명 디자이너의 솜씨다.
■들어오는 식구, 나가는 식구
취재 당일 ‘프리미엄 북스’는 두 명의 새 식구를 맞았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이 날의 주인공은 ‘정현종 시선’과 ‘흔적’ 두 권의 시집이다. 각각 50만원으로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그야말로 희귀 한정본이다.
‘정현종 시선’은 2004년 네루다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정현종 시인의 자필 수제 시집이다. 2005년 100부 한정으로 제작됐으며 각권마다 친필 작품 한편이 포함돼있다. 문화재 복원 수리 기능공 김권영씨가 전통 한지와 밀랍을 입힌 무명실로 꼼꼼하고 탄탄하게 만들어 언뜻 봐도 탐이 난다.
역시 100부 한정본인 ‘흔적’은 평론가 김화영 교수가 엄선한 현대시에 판화 작가 양주혜씨의 작품을 가미한 책이다.
이들은 곧 신간이 전시되는 왼쪽 끝 책장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 바람에 한동안 이 자리의 주인 행세를 했던 ‘난중일기 영인본’과 ‘칼의 노래(특별판)’는 한 칸 아래로 물러났다.
위풍당당하게 이곳에 입성했다 쫓겨나는 책도 있다.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는 12만원이라는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 덕분에 명품 딱지를 달았지만 출판사에서 반값 세일을 하는 바람에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송관장은 “희귀본은 그에 맞는 가격을 유지할 의무가 있는데 이렇게 염가로 판매해버리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퇴출 배경을 설명했다.
■비싸도 팔아내야 하는 고민
‘프리미엄 북스’ 개관 이후 2월까지의 성적표를 보면 판매액은 약 700만원, 권수로는 90여권이다. 비싸서 누가 살까 싶지만 판매가 아주 저조하진 않다.
구매 고객층은 미술 전공자나 사진작가, 대학 교수 등으로 폭이 좁다. 수십만원에 이르는 책 앞에서 선뜻 지갑을 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결국 다양한 잠재 고객을 발굴하고 소장 가치가 높은 책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이곳의 과제다.
‘정현종 시선’,‘흔적’과 ‘SUMO’를 제외한 나머지 도서들은 다른 서점과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정체성에 부담을 준다.
송관장은 “아무리 좋은 책이 출간되도 독자들이 알지 못하면 그대로 사장된다”면서 “묻혀진 도서를 발굴하고 진열해 소장가치를 높이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wild@fnnews.com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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