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구조조정 허점 드러난 RG 줄소송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5.19 18:12

수정 2009.05.19 18:12



신한은행이 메리츠화재를 상대로 선수금 환급보증(RG) 보험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인 가운데 기업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은행·보험사 간 RG분쟁이 점입가경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유동성 위기로 구조조정에 휩싸인 조선사들이 납기를 맞추지 못한데 따라 외국 발주처들의 선수금 반환 요청이 잇따르자 RG보증을 한 시중은행은 물론 RG보험사인 손해보험사와 재보험사마저 큰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더구나 채권금융기관 주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보험·조선사·외국 선주·재보험사 간의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불거진 갈등에 대해 채권단, 금융당국, 정부 각 부처 중 책임 있게 해결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주고 있다.

■RG 갈등 아직 ‘빙산의 일각’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진세조선의 RG보증은행인 신한은행과 RG보험사인 메리츠화재 간 소송을 시작으로 향후 RG책임소재를 가리는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현재 국내 중소형 조선사 중에는 21세기, 삼호통영, 대선조선, 녹봉조선, 대한조선, C&중공업, 오리엔트조선, 일흥조선, 광성조선, 운영조선, TK중공업, KY중공업, 동방조선, 목포조선, 지오마린, 세코중공업, 신안중공업, 고려조선 등이 있다.
대다수 외국 선주로부터 수주물량이 있으나 최근 국제무역 금감과 조선업황 악화로 향후 RG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드러난 RG 갈등은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향후 경기가 안좋을 경우 소송전이 잇따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워크아웃 및 매각작업에 차질을 빚었던 C&중공업 역시 우리은행과 메리츠화재 등 채권단의 RG분쟁이 ‘도화선’이 됐다. 이 밖에 녹봉조선 역시 신한은행과 동부화재 간 갈등이 있었고 진세조선에서는 신한은행, 메리츠화재뿐만 아니라 주채권은행인 국민은행과 흥국화재 등도 RG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구조조정 허점 드러나

이 기회에 채권금융기관 주도 구조조정의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채권금융기관을 은행이 일방적으로 독식하는 것과 재보험이 채권단에 빠져 있는 것이 그 예다. 또 채권단들이 기업 구조조정을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손실을 적게 보는 데 역점을 두는 것도 채권단 간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사들은 은행이 자신들보다 규모 면에서 훨씬 뒤처지는 보험사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보다 근본적인 갈등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규모 면에서 뒤처지는 보험사들은 은행들과 맞대응 할 수 있는 곳은 삼성생명 정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될 정도다.

이런 가운데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채권 부담액에 상관없이 주거래 은행에 무조건 많은 권한을 주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 조선사 구조조정의 경우 대부분 보험사들의 채권 부담액 규모가 훨씬 크지만 발의권한조차 없다는 게 보험사들의 주장이다. 손보사 관계자는 “채권 부담액이 적은 주채권은행들이 채권단 대표로 활동하면서 적잖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일부 은행들은 기업회생보다는 자신들의 손실 최소화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보험사들 대다수가 RG거래시 재보험 가입을 통해 위험을 ‘헤지’하고 있지만 대다수 외국계인 재보험사들은 채권단 가입이 안된 상태인 것도 문제다. 대주단 협약 적용을 받지 않으면서 채권금융기관협의회의 각종 혜택을 챙겨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일부 보험사는 해외 재보험사의 사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조정위 권영종 사무국장은 “대주단협약에 재보험사들이 못들어와 생긴 은행·보험 간 RG 갈등이 많다”며 “채권단들이 공동으로 재보험사의 확약서를 받으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이 또한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한편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진세조선의 경우도 철저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기업가치를 판단하고 채권단이 적극 조율을 했다면 이처럼 소송을 걸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채권단이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됐다”고 지적했다.

■해결책은?

소송에 휘말리게 된 은행, 보험사 모두 승자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의 산은기술평가원 류진학 팀장은 “이대로 가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라며 “은행, 보험사 간 잘못을 따지기보다 조선사를 교체해서라도 선박 수주를 진행시켜 RG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진단했다. 조선사 대출이 많은 모은행의 부행장은 “산업합리화 차원에서 조선사가 유동성 위기에 몰린 다른 조선사의 건조 중인 선박을 매입해 RG가 제대로 유통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장 부실 조선사의 건조 중인 선박을 사는 것은 경제·기술적 한계가 있다. 더구나 국토해양부, 금융당국, 조선협회 등이 이러한 산업적 측면을 고려해 갈등 해소에 나설지 역시 미지수다.
금융당국도 금융회사·소비자의 갈등이 아닌 금융기관 간 갈등에는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dskang@fnnews.com 강두순 안대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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